국내 전문의약품 시장은 그동안 다국적 제약사가 주도해왔다.


뛰어난 기술과 엄청난 연구개발 투자를 앞세운 다국적 제약사들을 국내 제약사가 맞대응하기는 한마디로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을 개발하는 대신 다국적 제약사들의 오리지널 의약품 생산 기술을 들여다 판매하는 쪽에 힘을 쏟아왔다.


올들어 이같은 시장 상황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국내 제약사들이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개량한 신약(제네릭 의약품)을 앞세워 기존 판도를 깨트리고 있다.


그 간판 주자가 바로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올해 당뇨병 치료제 '그리메티드',고혈압 치료제 '페디핀24 서방정''아모디핀' 등 개량 신약으로 전문 의약품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화이자의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를 개량한 '아모디핀'은 판매 석 달 만에 거의 모든 종합병원에서 처방 품목으로 채택됐다.


고혈압 치료제 처방시장의 25%를 차지,노바스크를 추격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이들 3개 개량신약만으로 올해 2백억원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회사 매출도 사상 처음으로 3천억원을 넘길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미약품의 '개량 신약개발'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민경윤 대표이사 사장(53)을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타워 내 집무실에서 만나봤다.


그는 평사원으로 한미약품과 인연을 맺은 지 25년 만인 지난 2000년에 CEO에 올랐다.


"올해는 최고의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외국에서 약을 수입해다 파는 손쉬운 방법을 털어버리고 묵묵히 개량신약을 개발해온 결과가 이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 사장은 지난 75년 영업사원으로 한미약품에 발을 들여놓았다.


영업사원 시절 구두 밑창이 6개월 만에 닳아버릴 정도로 제품파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이에 힘입어 입사 첫해에 판매왕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영업사원으로 두각을 나타낸 후 80년 총무과장으로 승진했다.


직책이 바뀌었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뛰었다.


"항상 직원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아침에 사원들을 위해 사무실을 정돈하곤 했지요.


회사가 저고 제가 곧 회사라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민 사장은 총무이사 상무이사 등을 거쳐 2000년 1월 대표이사에 올랐다.


평사원으로 한미약품에 입사한 지 꼭 25년 만이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노사간 벽을 허물기 위해 직원들과의 대화에 나섰다.


회사의 힘은 곧 직원들간의 화합에서 나온다는 소신에 따른 것이었다.


6개월에 걸쳐 1천여명의 직원들과 일일이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다.


당시 직원들과 함께 마신 술로 인해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다.


그는 '열린 경영''책임 경영''벽없는 경영''직원존중 경영' 등 4대 경영지표를 내걸었다.


회사 인트라넷을 통해 직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이메일을 통해 건의를 받았다.


직원들의 의견을 즉시 경영에 반영했다.


또한 'CIQ(Creative Individual Quarter)'라는 독특한 경영전략을 선보였다.


CIQ는 사원 각자가 분기별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목표를 설정해 그 달성도에 따라 업적을 평가,연봉 외에 별도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로,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한 만큼 회사는 보답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민 사장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노동조합도 2002년에 '임금 및 단체협약 영구 무교섭'으로 화답했다.


민 사장은 회사를 거듭나게 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데도 남다른 고민을 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바로 개량신약 개발 전략이었다.


다국적 제약사에 맞서기 위해 우선 특허가 만료되는 의약품 개발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그는 매년 전체 매출의 5∼6%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면서 개량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노력은 곧바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2001년 얀센의 항진균제인 '스포라녹스'를 개량한 신약 '이트라'를 개발해 발매한 데 이어 '노바스크'의 주성분인 '암로디핀 베실레이트'보다 안정성이 뛰어난 '암로디핀 캠실레이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50여개국에 특허 출원했다.


올들어 그리메티드,페디핀24서방정,아모디핀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국내 의약품 시장에 개량신약 돌풍을 일으켰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최근 한국CEO학회로부터 '전문경영인 대상'을 받기도 했다.


민 사장은 내년에 올해의 오름세를 더욱 더 가속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3∼4가지 개량 신약을 포함해 30여가지 신제품을 선보이면서 올해보다 26% 늘어난 3천8백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미국 애보트사의 비만치료제 '리덕틸'을 개량한 신약 '슬리머'가 임상시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사의 항암 주사제 '택솔'을 경구용으로 만든 '오락솔'의 전임상시험도 조만간 마무리될 예정이다.


또한 기존의 개량신약 판매를 강화,개량신약으로만 내년에 6백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내년에는 미국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 판매망도 확대,해외부문 매출을 올해보다 30%가량 늘리기로 했다.


민 사장은 또 다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작업에도 신경을 쏟고 있다.


개량신약 개발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연구능력을 활용해 항암제와 지속성 단백질 제제 신약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2010년까지는 세계적인 신약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난 5월 경기 기흥에 국내 최대 규모의 의약연구소인 기흥 연구센터를 건립했다.


또한 매출의 7.3%선인 연구개발 투자 비중을 2007년까지 10%선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한미약품은 국내 1위의 제약회사가 되는 것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민 사장은 "연구개발 능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며 "다국적 제약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