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가 지난 5월 발표한 "2004년 국가경쟁력"조사에서 금융규제 부문의 우리나라 성적은 조사 대상 60개국 가운데 52위였다. 세계 59개 연구기관의 모임인 경제자유네트워크가 지난 7월 발표한 "2002년도 경제자유지수"에서 한국의 금융자유지수는 1백23개국 가운데 63위로 조사됐다. "금융규제의 공화국"이란 비난이 나오는 게 괜한 말은 아니다. 특히 제2금융권에 대한 금융규제가 상대적으로 많아 금융권간 차별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실물 부동산을 반드시 편입해야 한다'는 법 규정 때문에 부동산펀드를 만들기 위해 1억원짜리 오피스텔을 찾아 헤매야 하는 게 증권·투신업계의 현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금융당국이 늦게나마 인식을 전환했다는 것이다.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완전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시급히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네거티브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지 못하면 창의적인 상품 개발 등이 불가능해 결국 경쟁력 강화와는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규제의 족쇄를 풀어라 증권업의 경쟁력이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데는 '빗장규제' 탓이 크다. 지난 10월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은 금 가격에 연동해 수익률이 결정되는 골드지수 연동 정기예금을 내놓아 단숨에 3천억원 이상을 끌어모았다. 당시 국제 금값이 상승세를 보이던 터라 '예금이자+α'를 기대한 고객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차세대 금융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장외 파생상품 분야에서 은행들은 금연계 금리연계 환율연계 상품을 모두 취급할 수 있다. 은행법이 포괄주의를 채택해 '예금'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어떤 상품이든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증권사들이 판매할 수 있는 장외파생상품은 주식연계 상품인 ELS밖에 없다. 증권거래법에 증권사가 취급할 수 있는 유가증권을 8가지로 나열해 놓고 여기 포함되지 않는 상품은 취급할 수 없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장외 파생상품에 관한 한 증권사가 은행에 비해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신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여지나 속도는 규제 때문에 은행에 비해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이 외에도 방카슈랑스,비과세상품,MMAD와 MMF의 차별,신탁업무 등 은행과 증권사 간 업무영역에 대한 차별적 규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금융규제 틀을 바꿔야 글로벌 금융 허브인 뉴욕과 런던 금융시장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은 이미 보편화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은행 증권 보험 등 영역별로 세분화된 포지티브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감독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규제가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비등하자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금융규제의 큰 틀을 바꿀 것임을 시사했다. 금융규제 방식을 현행 '제한적 열거주의(포지티브 시스템)'에서 '완전 포괄주의(네거티브 시스템)'로 고치겠다는 것.네거티브 시스템은 법에 명시된 금지사항만 위반하지 않으면 나머지 모두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명시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에 비해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최근 이 부총리 발언 후 나온 규제완화 조치에는 네거티브 시스템 도입이 빠졌다. 모처럼 정부가 내놓은 규제완화 조치가 '앙꼬 없는 찐빵'이 돼서는 안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