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아파트 단지 통째로 경매] 입주민 보호장치 없어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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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택 서민들이 세들어 사는 임대아파트가 무더기로 경매에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98년 환란(換亂)이후 또다시 '임대주택 경매대란'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임대주택이 경매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무주택 서민들이 셋집에서마저 쫓겨나 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정부는 예산확보의 어려움으로 손을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국민주택기금을 빌려 지은 부도 임대아파트는 14만6천여가구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세입자가 실제로 살고 있는 입주 후 부도 임대주택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5백20여개 단지에 9만2천여가구로 파악되고 있다.
◆임대주택 부도 왜 많은가
무엇보다 임대주택업체들이 대부분 자금력이나 경영능력이 부족한 영세업체이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형 건설업체들의 경우 거의 모두가 분양아파트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임대주택 건설을 외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다 보니 경기가 나빠져 임대주택 건설업체들이 자금난에 몰리면 속수무책으로 부도처리되기 일쑤다.
환란 직후인 지난 98년의 경우 주택건설업체들이 무더기 도산하면서 이들이 관리하던 임대주택만 한 해 동안 무려 2백개 단지 4만3천5백87가구가 경매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정부가 주택건설업체에 빌려주는 국민주택기금이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자금이 없더라도 평형에 따라 가구당 4천5백만∼6천만원까지 지원되는 국민주택기금을 이용해 임대주택을 지은 뒤 나중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고의부도를 내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임대주택사업을 하는 업체는 대부분 주택사업에 갓 뛰어든 소형 업체라고 보면 된다"며 "임대주택사업의 수익성을 높여 대형 건설업체들도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매에 넘어가면 어떻게 되나
부도로 쓰러진 건설회사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 등이 채권확보를 위해 담보로 잡고 있던 임대주택을 경매에 넘기게 된다.
경매가 진행되면 세입자들이 임대주택에 입주할 때 확정일자를 받아 놓더라도 국민주택기금이나 채권금융기관보다 순위가 밀릴 경우 보증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떼일 수밖에 없다.
정부도 세입자들의 경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액 보증금(지역별 3천만∼4천만원 이하)은 가장 먼저 변제(1천2백만∼1천6백만원까지)받을 수 있도록 안전장치(주택임대차보호법)를 마련해 놓고 있지만 요건이 맞지 않아 보증금을 떼이는 사례도 허다하다.
특히 요즘처럼 경매에서 유찰이 많을 경우에는 세입자에 대한 배당금이 적어 변제 한도인 1천2백만~1천6백만원보다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법원에 배당신청을 한 세입자에게만 국한되고 있어 법을 잘 모르는 세입자들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대책은 없나
정부는 현재 세입자가 살고 있는 부도 임대주택(9만2천여가구) 가운데 5만가구 안팎에 대해 세입자들이 직접 소유권을 이전받도록 분양전환을 추진 중이다.
또 2만가구는 정부가 직접 매입해 국민임대주택으로 활용할 계획이어서 경매집행을 보류하고 있다는 게 건교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나머지 2만가구 안팎은 채권·채무관계가 워낙 복잡해 사실상 '매입 불가' 판정을 받은 상태로 언제든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놓여 있는 처지다.
또 부도 임대주택 중 상당수가 불법으로 전대(轉貸)되고 있어 분양전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국민임대주택으로 활용키로 한 2만가구도 예산이 없어 아직 한 가구도 매입하지 못한 상황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다른 세입자에게 전대된 임대주택이라도 실제 거주자가 분양전환받을 수 있도록 관련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라며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조만간 부도 임대주택 보완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