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회화의 재부상은 최근 국제 미술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 독일 출신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시그마 폴케는 다시 주목받고 있는 평면 회화의 정점에 있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독일의 경제월간지 '카피탈'이 선정하는 '세계 1백대 작가' 명단에서 지난해와 올해 1,2위 자리를 주고받았다. 천안의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시그마 폴케전'은 폴케(63)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전시다. 아라리오의 대표 컬렉션인 '서부에서 가장 빠른 총''이 발명은 인류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석탄 배급표''파파게노' 등 24점이 출품됐다. 폴케의 작품이 아시아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86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폴케는 개념적인 이데올로기에 치중하는 다른 독일 작가들과 달리 재료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통해 표현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해 왔다. '서부에서 가장 빠른 총'은 가로 5m 세로 3m의 파브릭(천) 틀에 합성수지의 일종인 레진을 부은 후 이 위에 그림을 그려넣고 다시 레진을 덧입혔다. 서구 총기문화를 비판한 이 작품은 무수히 복제되는 대중매체의 광고 이미지를 차용해 수공업적인 기법으로 재현해 냈다. 화려한 꽃문양이 찍힌 식탁보에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의 등장인물을 그려넣은 '파파게노'는 팬플루트를 불며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작가의 초상과도 같은 작품이다. 대작인 '무제' 시리즈는 대량 생산된 세 개의 파브릭을 꿰매어 놓은 캔버스 왼쪽 아래에 소설가 헤밍웨이의 모습을 그려넣었다. 폴케는 평면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뉴 페인팅(New Painting)'의 선구자로 불린다. 아크릴 파브릭 레진 질산 운모 폴리에스터 등 사용한 재료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의 이미지,역사,음악 등을 평면회화에 끌어들임으로써 젊은 작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내년 3월31일까지. (041)551-510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