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국회의 표상인가,입법 과잉 의욕인가." '새 국회상의 정립'을 표방하며 출범한 17대 국회의 가장 큰 특징은 의원입법 발의안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7대 국회의 회기가 시작된 이후 23일 현재까지 국회에 제출된 의원 발의 법률안은 8백5건에 달한다. 이는 지난 16대 국회 전체기간에 제출된 의원입법안(1천9백12건)의 42.1%에 해당한다. 17대 국회 회기가 이제 8분의 1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16대의 4배에 가까운 실적이다. 입법안 제출이 급증한 것은 여야 의원들이 법률 제·개정을 통해 불합리한 제도를 고치려는 의욕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근본적으론 입법실적을 올리기 위한 선심성 및 생색내기용의 '한건주의'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같은 이름의 법안도 수십건식 '우후죽순'격으로 제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게 조세특례제한법개정안.이 개정안은 무려 31건이 제출됐다. 소득세법개정안도 10건,법인세법개정안은 5건에 달했다.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고 문구 몇자 고치면서 같은 당 의원들간 사전 조율 과정도 없이 제출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안 심사때마다 각 부처 관료들이 줄줄이 국회로 불려오는 폐해가 잇따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예산소요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제출하는 바람에 법안 통과땐 국가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국회와 기획예산처 등에 따르면 예산안이 필요한 1백17건의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예산 소요 규모는 52조3천9백78억원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다. 해당 상임위에서 대부분 '제동'이 걸렸지만 세금을 깎아달라는 '감세법안'도 봇물을 이뤘다. 이 중 상당수는 표심을 겨냥한 '선심성'이라는 분석이다. 국회는 제출된 법안을 제대로 소화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출된 의원발의 법안 8백5건 가운데 처리된 법안은 92건에 불과하다. 44건은 폐기됐다. 법안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도 많다. 툭하면 정쟁으로 국회 기능이 마비되기 때문에 계류중인 법안들이 제대로 된 심의를 거친 후 처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개별 의원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함량미달 상태로 일단 제출해보자는 식으로 제출된 법안도 많다"고 지적했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은 지난 9월 무분별한 법안 발의를 막기 위해 대표 발의 의원 이름을 같이 적도록 하는 법안실명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하기까지 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