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일 < 한국투자증권 사장 > 지난 17일부터 주식시장에서는 모처럼 증권주들이 활짝 웃었다. 전날 정부가 발표한 '증권산업 규제완화 방안' 때문이었다. 정부의 전향적 방침에 시장이나 투자자나 모두 주가로 환영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사실 은행권과의 차별 해소를 통한 수익기반 확대는 증권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문제는 시중자금의 지나친 은행권 쏠림 현상에서 비롯됐다. 피가 잘 돌아야 건강하듯 돈도 필요한 곳에 골고루 공급돼야 했지만 우리 경제의 대동맥은 상당 부분이 막혀 있었다. 각종 업무를 가로막고 있는 증권산업의 규제를 푸는 정책은 그래서 더욱 절실했다. 투자 활성화를 불러오는 자본시장의 발전이 곧 우리 경제의 역동성 증대와 맞닿아 있기도 했다. 금융산업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할 이번 조치를 크게 반기면서 나아가 '한국형 금융빅뱅'까지도 기대해 본다. 1975년 미국,1986년 영국,1996년 일본의 금융빅뱅은 모두 자본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뒀다. 은행과 증권간 장벽 철폐,증권 위탁수수료 자율화,직접금융의 효율성 제고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자본시장의 일대 개혁이 이들 국가를 금융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형 금융빅뱅의 가능성을 읽는다. 규제완화는 혁신을 통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규제완화 방안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빅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물론 그 대부분은 업계의 몫이다. 우선 증권업계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경쟁력과 전문성,차별성 확보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규제완화와 자율에는 당연히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그동안 증권산업 답보의 책임을 정부탓으로 돌리기도 했지만 앞으로는 핑계거리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양날의 칼'이라는 말이 있듯이 성공이냐 퇴보냐 하는 갈림길이 우리 앞에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 업계는 달리지는 제도에 걸맞은 증권문화 개선을 위해 앞장서야 할 것이다. 투자자에게 장기 투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저금리 노령화 시대에 개인의 미래를 설계하고 은퇴 이후 새로운 삶의 여유를 즐기는 데 있어 언제나 증권회사가 함께 한다는 '라이프 파트너'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바로 '먹고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 선진국 증권회사들이다. 증권사 내부적으로는 고도의 전문성을 기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본다. 과감한 투자와 인재 채용,보수체계의 변화 등 증권사 기업문화의 혁신적인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에 새 제도의 조기정착과 성공을 위해 증시 수급기반 확충에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무엇보다도 이번 조치를 계기로 법 개정이 필요한 '연기금 주식투자 허용'과 '비과세 증권상품 상설화' 같은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바란다. 특히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하는 쪽으로 '기금관리기본법'을 시급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수익자인 국민을 위해 기금의 자본시장에 대한 포괄적인 투자를 허용해줄 것을 정치권에 촉구한다. 저금리시대의 새로운 투자대안을 반드시 찾아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우려하고 있는 의결권 행사 문제는 운용전문 인력을 독립기구화하고 상당 부분 운용사에 아웃소싱하는 등 해결책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정부와 업계가 각각의 분야에서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이게 곧 금융선진국을 향해 가는 한국형 금융 빅뱅의 단초가 되지 않겠는가. 큰 태풍도 나비의 날개짓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첫발부터 잘 디뎌야 한다. 이제 민관이 함께 손잡고 한국 금융발전사의 큰 걸음을 떼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