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3시)부터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재투표가 실시됐다. 이번 선거는 지난달 21일 있은 2차 투표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 3일 무효 선언과 함께 재투표 실시를 결정한데 따른 것이다. 이번 선거에는 10월 31일 실시된 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야당 후보인 빅토르 유시첸코 전 총리, 빅토르 야누코비치 현 총리가 재대결을 벌인다. 당시 1차 투표에서는 39.87%를 획득한 유시첸코가 39.32%에 그친 야누코비치를 0.55% 포인트 차로 앞섰다. 우크라이나 중앙선관위는 2차 투표에서는 야누코비치가 49.46%의 득표율로 46.61%의 유시첸코를 누르고 승리했다고 밝혔지만 의회와 대법원은 이를 무효화했다. ◇ 국제감시단 규모 1만명 넘어 = 이번 재투표의 총 유권자 수는 지난 2차 투표당시의 3천700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양 후보간 TV 토론을 앞두고 14~19일 우크라이나 여론정보센터가 전국 유권자 2천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시첸코가 53.3%의 지지율로 야누코비치(41.7%)를 11.6%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양 후보간 TV 토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시청자의 73%가 유시첸코를 지지했다. 유시첸코 본인도 최소 60%의 득표율로 당선될 것을 예상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재투표의 최종 결과를 늦어도 내년 1월 10일까지 확정한 뒤 13일까지 관보에 게재해야 한다. 하지만 26일 재투표의 결과 예측은 종전처럼 다음날인 27일 오전(현지시각)이면 나올 전망이다. 신임 대통령의 취임은 늦어도 내년 2월 12일까지 이뤄져야 하지만 이보다 앞서 1월 10~14일에 공식 취임식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재투표 참관을 위해 중앙선관위에 공식 등록한 국제 감시단 규모가 1만2천187명에 달할 만큼 우크라이나 대선은 올 연말 최고의 국제 이슈가 되고 있다. 이번 국제 감시단 규모는 1차 투표때 2천354명, 2차 투표 때 5천여명에서 2배이상 늘어난 것이다. 유시첸코는 (비공식 감시단원까지 포함해) 이번 재투표에 8만여명의 외국 감시단원들이 와서 모든 투표소를 참관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 2차 투표에서 40명을 파견했던 캐나다는 이번에는 존 터너(75) 전 총리가 500여명을 직접 이끌고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캐나다에는 10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계가 살고 있으며 캐나다는 1991년 우크라이나에 대해 제일 먼저 국가승인을 했다. 미국은 100명 규모의 공식 감시단을 보냈으며 러시아 국가두마(하원)는 31명의 의원을 파견했다. ◇ 양 후보, 기존 이미지 탈피 노력 = 재투표에 나서는 두 후보는 지난 8일 우크라이나 의회(라다)가 대통령의 권한 약화를 골자로 한 개헌안과 공정 선거 보장을위한 선거법 개정안을 일괄 승인한 뒤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친서구와 친러 성향을 각각 대변하는 유시첸코와 야누코비치 후보는 재투표에앞서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는데 힘을 쏟아왔다. 먼저 야누코비치는 레오니드 쿠츠마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러시아 일변도에서벗어나 서구와의 협력 의지를 과시했다. 야누코비치는 지난 21일 우크라이나 주재외교단과 가진 회견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히기도 했다. 선거 기간 내내 나토 가입을 부정해왔던 그는 "우크라이나 정치 상황과 안보를 위해서는 나토 가입은 필수"라고 주장했다. 야누코비치는 또 레오니드 쿠츠마 현 정권과 거리를 두는 발언으로 자신이 수구정치인이라는 인상을 벗는데도 주력해왔다. 지난 20일 유시첸코와 가진 TV 토론에서"우리 두 후보는 힘을 합쳐 낡은 현 정권을 퇴장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는 유시첸코 진영은 미국 등 서구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왔다. 그는 "러시아는 대국 일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게는 큰 이웃이자 영원한 전략적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유시첸코는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의 제2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주장에 대해 기존의 반대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토론을 통해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유시첸코는 특히 상대 후보의 지지 기반인 동부 지역을 주로 방문해 선거로 분열된 지역간 분열을 그만두고 화합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향후 재충돌 가능성 = 재투표 이후 관심사는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간에 또다시 충돌이 일어날 것인지에 있다. 아무리 공정한 선거를 치렀다고 하더라도 양 후보의 지지 기반이 확연히 갈라져있고 상대 후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마당에 감정적 충돌이 발생할 수있기 때문이다. 야누코비치의 지지 기반인 동부의 도네츠크, 루간스크주(州)에서는 분리 독립을위한 주민투표 실시를 일단 보류한 상태지만 야누코비치가 패배할 경우 분리의 목소리가 득세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는 유시첸코의 텃밭인 르보프 등 서부 지역도 마찬가지다. 특히 유시첸코 선거 운동원들이 재투표가 결정된 후 50여대의 차량을 몰고 동부지역에 가서 선거 운동을 벌이려고 했지만 야누코비치 지지자들은 이들의 출입을 수차례 봉쇄하며 마찰을 겪었다. 도네츠크 주민들은 "야누코비치가 우리 대통령이며 다른 사람은 필요없다"면서 유시첸코 지지자들을 문전박대했다. 남부 크리미야 자치공화국에서도 유시첸코 진영은 유혈 충돌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방문 자체를 취소했다. 야누코비치는 어떤 선거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가 통합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본인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 그는 "재선거 이후 불안정이 초래될 수 있다"면서 "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유시첸코를 이 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데 결코 동의하지 않으며 그들을 막을수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에 대비해 지방에 보다 많은 (경제적) 자치권을주는 방안을 도입하자고 주장해왔다. 유시첸코 지지자들도 대통령 행정실 건물에 대한 봉쇄를 풀라는 법원의 결정을 무시한채 "유시첸코가 대통령으로서 이 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볼 때까지 남아있겠다"고 말해왔다. 이들은 야누코비치의 당선은 부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만큼 그가 당선될 경우 다시 시위에 나서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한편 유시첸코가 당선될 경우 수도인 키예프에서 충돌은 예전보다 덜 할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동부 지역의 야누코비치 지지자들이 유시첸코의 지지 세력이 밀집한 키예프로 진격하는데는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 개정 선거법 효력 발휘할까 = 우크라이나 의회는 재투표를 앞두고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해 혼자 힘으로 이동할 수 없는 1등급 장애인만이 집이나 병원 등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했다. 예전에는 고령자와 일반 환자들도 임의의 장소에서 투표를 함으로써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많았는데 유시첸코측은 이를 막겠다며 그 대상을 한정한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재투표를 하루 앞둔 25일 이같은 제한이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헌재 결정이 난 25일 오전 11시(현지시각)부터 당일 오후 8시까지 해당 지역 선관위에 집에서 투표할 것을 신고할 경우 예전처럼 가능하게 된다. 현재 이 조항의 적용을 받는 유권자는 300만명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2차 투표결과 양 후보간 표는 100만표 미만이다. 야누코비치측은 당초 집에서 투표하려던 시민들이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유시첸코가 그들의 투표권을 제한하려 한다고 비판해온 만큼 이들의 표가 자신에게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여러 곳에 주소나 사업등록지를 둔 시민들의 경우 당국은 이들의주소지마다 투표 명부를 만들어 임의 투표를 할 여지가 많았는데 이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했다. 이밖에 지역 선관위는 선거 당일에 유권자의 성명, 생년월일, 주소 둥에 대한기재 사항을 원칙적으로 정정할 수 없도록 했으며 이를 하려면 법원의 결의서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했다. 일정 지역에서 발행된 투표 용지가 투표자 명단의 인원보다 5%를 초과해 발행됐을 경우에는 선거무효를 제기할 수 있다. 또 각 지역 선관위원의구성비는 양 후보 진영이 동등하도록 조정됐다. (키예프=연합뉴스) 김병호 특파원 jerom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