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동계의 투쟁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이뤄졌으며 과격한 투쟁의 한계를 확인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국민 정서를 의식해 파업 수위를 조절하거나 아예 파업을 철회하기도했으며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한 파업 강행은 `뭇매'를 맞아야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어 정규직법안 등을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노사정이 새해에는 중단됐던 대화틀을 재가동하게 될 전망이다. ◆노동계 투쟁 환경 변화= 노동계의 투쟁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동안 제도권과 활발한 관계를 가져왔던 한국노총은 물론민주노총도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을 바탕으로 제도권에서의 보폭을 넓힐 수 있게된 점이다. 17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에 제출된 정부의 비정규직법안이 사실상 `연내 처리유보'로 가닥이 잡히는 과정에서 `연출된' 한 장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비정규직법안에 대한 대체토론을 벌인뒤 관련 법안을 곧바로 법안심사소위로 넘길 지 여부를 결정하는 그 시간 상임위 회의실 바로 옆 소위 회의실을 민주노총 인사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무단 점거가 아니라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간부 일행이 편한 자세로앉아 단병호 의원 등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국회의원들의 논의 결과를지켜보고 있었다. 민주노총은 그날 국회 환노위가 비정규직법안을 법안심사소위로 넘길 경우 `강행 처리'로 간주해 재파업에 들어갈 것을 선언한 상태여서 긴장감과 함께 환노위 회의 결과에 온통 이목이 집중됐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마디로 민주노총은 국회 담장밖에서의 파업투쟁이나 항의시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직접 논의과정을 감시하며 `압력'을 행사하는시대가 온 셈이다. 국회 환노위는 그날 대체토론을 마친 비정규직법안을 곧바로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하는 대신 공청회를 거치기로 하는 사실상 `처리 유보'를 결정했으며 민주노총이예고했던 재파업은 자동 취소됐다. ◆국민 여론 `과격 투쟁은 노(No)'= 노동계 투쟁에 대한 국민 여론도 과격 투쟁에 대해서는 비난의 화살을 보내며 `압박'하는 양상을 보였다.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지난달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의충파업 투쟁이 여론의 뭇매를 맞아 실패로 끝난 경우가 노동계 투쟁에 대한 변화된국민 정서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또한 정부의 비정규직법안 입법화를 저지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총파업도 지난달26일 강행되긴 했으나 3시간 한시파업에 그쳤고 철도노조의 총파업도 국민 여론을의식한 노사간의 극적인 협상 타결로 철회된 점도 주목을 끌었다. 노동계는 이 같은 여론의 압력에 대해 장기 불황이라는 경제적인 사정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비장의 무기'인 파업 투쟁전략에 대해서도 재점검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한국노총이 발간한 `2004년 조합원 의식조사 보고서'도 전투적인 투쟁에근로자들의 의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투적 노동운동방식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전투적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10.9%에 불과한 반면 `투쟁성은 유지하되 유연한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39.6%)와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운동방식을 강구해야 한다'(45.9%)가 높게 나타났다. ◆`대화 필요' 공감..민주노총 참여가 관건= 노동운동을 둘러싼 이들 환경 변화는 노사정간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공식적인 대화는 수시로 이뤄지고 있지만 노사정간 대화의 장으로 만들어진노사정위원회라는 공식기구가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가운데 운영될 때 대화의진정한 의미가 있다. 현재 공식적인 대화채널은 지난 6∼7월 두차례 이뤄졌던 노사정 대표자회의가지난 8월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중단된 이후 복원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정간 대화틀을 다시 가동하는데는 민주노총의 참여가 관건이며미뤄졌던 노사정위 개편은 물론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논의 진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내달로 예정된 정기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사정위 복귀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현재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으며 정부도 민주노총에 적극적인 `구애'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계가 환경 변화속에서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내년에는 본격적인 대화틀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제.개정 법안은 물론 다른현안에 대해서도 노사정간 대화로 풀어가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도 노사정 대화가 계속 공전될 경우 국민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것"이라며 "정부는 한국노총과 더불어 민주노총까지 참여한 대화틀을 만들기 위해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도 "내달 정기 대의원회에서 노사정위 복귀여부를 최종결정하기 위해 조직내 의견을 수렴 중"이라며 "정부와 경영계가 진정한 대화의지가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복귀여부 결정에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h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