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올해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한 해였습니다. 스스로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세모를 맞은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의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 않다. 쉴새없이 밀려드는 행사 일정에 재계의 각종 현안들을 챙기느라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한 해였지만 이렇다할 만한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가 주장하는 '시장경제 원칙'이 제대로 관철되지 않은 데 대해 짙은 회한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시장경제를 둘러싼 개념이나 인식의 격차가 의외로 크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현 부회장은 올해 초 주요 기업들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파문이 터져나오자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만들어 정치권에 건의하고 사법당국을 찾아다니며 기업인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하반기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기업도시 특별법에 재계의 입장을 반영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함께 열린우리당의 '386 의원'들과 릴레이 면담을 가지며 상호 접점을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의 주장이 잇따라 묵살되면서 이 모든 노력들도 무위로 돌아갔다. "참 답답합니다. 재계는 그저 경제의 우선 순위와 시장경제원칙 확립을 강조하는 것 뿐인데 일부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오해를 합니다. 최근 극단으로 치달은 좌·우파 논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재계를 너무 우익지향으로 몰고가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현 부회장은 다만 올해 출자총액규제를 비롯한 주요 현안들을 이슈화하고 일정부분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은 적지 않은 소득이라고 자평했다. 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군 인적자원 계발사업을 본궤도에 올리고 퇴직경영인들의 중소기업 경영자문 사업을 시작한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성과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도 역점사업으로 첫 손가락에 기업도시 건설을 꼽았다.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법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할 뿐,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얘기했다. "기업도시가 건설되면 우리 경제가 또 한차례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나 국민 모두가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믿습니다." 현 부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지금은 조금 허탈하고 피로하기도 하지만 새해에는 뭔가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며 "사실 이 정도의 일로 힘들다고 하면 경기침체로 고생하는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