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이 있다. 무력감이다. 열심히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때 사람들은 힘이 빠진다. 새롭게 도전할 용기가 없어지고 그럴 흥도 나지 않는다.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 기업이 할 게 뭐있겠나. 기껏해야 돈 안쓰고 사람 줄이는 축소지향의 구조조정 정도다. 무력감을 갖게 한 요인은 많다. 국제유가급등,환율 급락,정국 경색,자산거품 붕괴 등 외부적 요인은 개별 기업들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고생해서 수출해놓고 오히려 환율하락 때문에 눈뜨고 손해를 볼 때 기업들은 맥이 풀린다. 작은 가게나 소기업들엔 저성장 경제 자체가 무력감의 원천이었다. 외식하던 사람들이 집에서 먹고 멋쟁이들도 몇년 된 옷으로 버텨가니 종업원을 둘 이유조차 없어진 식당,상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다행히 곧 해가 바뀐다. 회사나 기관마다 새로운 희망으로 시무식을 가지며,개인들은 한해 계획을 세우며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하는 시기가 왔다. 문제는 방향이다. 자신감을 상실한 기업들은 도대체 무엇을 먼저 해야 할 지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답은 없지만 방향은 있다. 바로 '성장'이다. 인원을 줄여서,그를 통해 숫자적으로 높아진 생산성만 믿고 버텨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어떤 형식으로든 비즈니스를 키워야 한다는 것으로 기업의 화두를 통일할 필요가 있다. 성장은 대형화,글로벌화 추세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성장은 투자를 통해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사업구조를 정비하는 것으로도 성장은 가능하다. 웬만한 기업이면 다른 회사도 다 하는 것이라며 별 성과도 없는 사업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고리를 끊고 성과가 많은 영역에 자원을 집중하는 전통적인 사업구조조정으로도 성장은 얼마든지 도모할 수 있다. "성장의 기회는 장기적인 불황에도 찾아온다.1930년대에도 기업,병원,대학을 불문하고 사업의 내용을 계속적으로 좋게 만든 조직에는 성장의 기회가 찾아왔다."(피터 드러커) 사업구조를 좋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가 혹시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건 아닌지 신중히 검토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작은 식당을 경영하는 주인이라면 한번 꺾인 매상고는 경기가 살아나도 금방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새 품목도 내놓아보고 업종 전환도 과감하게 추진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이라면 오히려 이런 변화 추진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버티고만 있으면 경기가 살아날 때 비즈니스도 잘 될 것이라고 우직하게 믿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정부도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10년 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가 정부 경제정책의 화두였다. 신성장산업 발굴과 산업동력 확충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경기가 최악인 요즘에는 이런 논의가 쏙 들어갔다. 성장해야 한다는 당위를 알면서도 기업들이 움츠리고 있는 것은 성장의 열쇠를 몰라서다. 성장의 열쇠는 사실 간단하다. 시장에서 먹히는 새 상품이나 새 서비스를 만들어 히트를 치면 된다. 그것이 바로 혁신이다. 여기에다 그런 혁신을 이루기 위해 고객과 시장을 연구하고 기회를 모색하며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있으면 된다.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려 무력감을 일거에 해소하는 혁신 기업들이 쏟아지는 내년을 기대해본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