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가 지난 27일 제27차전체회의를 끝으로 1년2개월여에 걸친 활동을 마감했다. 사개위는 외견상 작년 8월 대법관 제청파문을 계기로 청와대와 대법원의 사법개혁 공동추진 합의에 의해 탄생했지만 내용상으로는 50여년간 유지된 사법제도가 변화된 환경에 걸맞도록 새 패러다임을 모색하자는 시대적 요청의 반영이기도 했다. 사개위는 비교적 짧은 기간의 활동에도 각계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대법원장이내놓은 5대 안건에 대한 논의를 마감, 혁신적인 결론을 속속 내놓았으며 구체적 실현방안은 향후 2년간 가동될 사법개혁 추진기구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그러나 사개위가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시한에 쫓기는 바람에 심도있는 논의를거치지 못한 채 사개위에서 다뤄야 할 쟁점을 후속기구로 떠넘겼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없진 않다. ◇ 성과 = 사개위가 출범할 당시 대법원장이 상정한 안건은 ▲대법원의 기능과구성 ▲법조일원화 및 법관임용방식 개선 ▲법조인 양성 및 선발 ▲국민의 사법참여▲사법서비스 및 형사사법서비스 개선 등 5가지. 사개위 활동이 종료된 지금 최대 결과물은 오랜 산고 끝에 내놓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즉 법조인 양성 및 선발방식의 확정이라는 데 이론이 없어 보인다. 95년 1월 대법원이 범행정부적으로 조직된 세계화추진위원회와 합동으로 `법조학제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시작된 법조인 양성제도 개선안 논의가 사실상 10년만에 종착역에 도달, 청사진이 마련된 것이다. 사개위는 법학교육의 정상화와 `고시 낭인(浪人)'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스쿨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2008년 첫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목표 하에 현행 사법시험 제도는 2013년부터 폐지키로 했다. 배심.참심제로 대별되는 국민의 사법참여제 도입 결정도 사개위의 두드러진 성과중 하나다. 사법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과 국민의 신뢰 제고를 위해 배심.참심제와 같은 국민의 사법참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사개위 내부에서 진작 형성돼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채택할 지를 찾아내는 작업이 난관이었다. 사개위는 어렵사리 2007년부터 5∼9명의 일반시민이 직업법관과 함께 재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배심.참심의 요소를 혼합한 모델을 시행하고 2012년 완성된 제도를마련키로 했지만 위헌논란 등 향후 추진기구에서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부담을 줄임으로써 정책법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수행할 수 있게 하고 서열 위주의 경직된 법원 인사제도를 개선, 문호를 개방하는방안도 마련됐다. 사개위는 전국 5개 고등법원에 경력이 많은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된 상고부를둬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건의 3심을 처리토록 함으로써 대법원이 사회적으로나 법리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을 중점 심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또 연수원 수료생 중에 신규법관을 대부분 충원해온 임용방식도 변경, 경력 5년이상의 변호사.검사 등의 법관 임용을 해마다 늘려 2012년까지 신규 임용법관의 50%를 이들 중에서 선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조 일원화' 방안도 확정지었다. 이밖에 형사사건의 신속처리절차 신설, 인신구속제도 개선, 국선변호 범위 확대,공판중심주의적 심리절차 확립, 형벌체계 합리적 재정립, 범죄 피해자 보호방안, 군사법제도 개혁, 법조윤리 확립 등 사법서비스 개선을 위한 숱한 방안을 마련했다. ◇ 평가 = 사개위가 우리나라 사법제도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올 굵직굵직한 결론을 내린 것은 1년2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활동기간을 감안할 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김갑배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는 "종전의 사법개혁 시도가 무위로 끝난 것과비교해 이번 사개위는 성공적이었다"며 "후속기구를 둬 사개위 결론을 매듭짓게 한점 역시 과거와 달리 사개위 논의의 실질화를 위한 진일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 법대 부총장을 지낸 데이비드 N. 스미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도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사개위 활동은 정부와 법원이 적극적으로 참여, 여타 국가과 사법개혁 작업과 비교할 때 높이 평가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격찬한 바 있다. 다만 숱한 안건에 비해 비교적 짧았던 활동시한 탓에 일부 주제의 경우 심도있는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다소 추상적 결론에 만족하면서 향후 추진기구의 몫으로미룬 것은 아쉬운 부분이란 지적도 있다. 김갑배 이사는 "시한에 촉박해 충분한 논의를 이루지 못한 채 후속기구에 떠넘긴 부분은 못내 아쉽다"며 "운영과정에서 위원들이 충분한 연구.검토를 해오지 않아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측면도 옥의 티"라고 말했다. 이국운 한동대 교수는 "사개위원중 사법서비스 수요자는 전체의 1/3도 못미치는등 사개위가 공급자로서의 본질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수요자 대표는 수동적 유권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며 사개위 구성 자체의 불균형을 지적하기도 했다. 임지봉 건국대 교수는 "후속기구 역시 시민단체 등 수요자가 배제돼 있어 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면서도 "쉽진 않겠지만 모쪼록 후속기구에서 사법개혁의 청사진을 구체화, 국민을 위한 사법의 틀이 갖춰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