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석용 해태제과 사장 lymn@ht.co.kr > 연말이면 어김없이 기억나는 책 한 권이 있다.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이다. 일본 삿포로에는 섣달 그믐날(12월31일)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첫 참배를 가는 것으로 가는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어느해 섣달 그믐날 늦은 밤.우동집 '북해정'이 영업을 끝내려는 순간 남루한 옷차림의 한 여인과 여섯 살과 열 살 정도의 사내 아이들이 들어와 머뭇거리며 우동 1인분만을 주문해도 괜찮은지 물어본다. 주인 부부는 안타까운 마음에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아준다. 이듬해 섣달 그믐날도 이 세 모자는 우동 1인분을 시켜 나눠 먹는다. 그로부터 한참이 흐른 뒤 그 우동집에 잘 성장한 두 청년과 중년의 부인이 찾아왔다. 그들은 바로 우동 한 그릇을 시켜놓고 나누어 먹던 십 수년 전의 세 모자였다. 세 모자는 모질게 가난했던 시절, 우동 한 그릇에 담아 자신들에게 나누어준 보이지 않던 사랑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노라고 눈물 어린 감사를 풀어놓는다. 그 날 그들에게는 '최고로 사치스러운 일'인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순간, 고개를 끄떡이면서 그들이 살아온 지난 십 수년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는 왈칵 눈물이 흘러내리고 무뚝뚝한 얼굴을 눈물로 적신 주인은 "우동 3인분!"을 외치며 목이 메인다. 언제부턴가 내 맘대로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과 마음을 배려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내가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내가 무심히 행한 행동에 기분상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또 지금까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도움이나 사랑에는 감사하다는 말이라도 전달할 수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 속으로 배려하고 응원해주신 분들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조차 전하지 못한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내년에도 경기가 상승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전망 속에서 무겁게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소설 속에 나오는 그 우동집 주인의 마음가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어려울수록 서로가 더 많이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면 외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들은 가슴 속의 따스함으로 덥혀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