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6:29
수정2006.04.02 16:32
< 지용근 글로벌리서치 대표 ykji@globalri.co.kr >
몇 년 전 일이다.
어떤 과자회사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초콜릿 제품이 갑자기 팔리지 않는다며 왜 안팔리는지 진단해 달라는 조사 의뢰가 들어왔다. 나는 곧 조사기획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몇 명의 소비자를 개인적으로 만나 그 제품의 취식 실태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제품은 소비자가 낱개로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제품이었다. 조사방법 중에는 집단심층토의법(FGI)이라는 게 있는데,녹화·녹음시설이 갖춰진 회의실에서 8명 정도의 소비자들을 모아놓고 전문 진행자가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난 이 방법을 사용할 것을 의뢰자에게 권고했다. 몇 그룹을 진행한 결과 공통적으로 "이거요,전에는 맛있어서 사먹었는데 지금은 한 입에 넣기에 너무 커서 안먹게 돼요"란 말들이 나왔다. 답이 나온 것이다. 제품 개발자가 어른 입 크기에 맞춰 제품을 만든 것이다. 의뢰자는 곧바로 크기를 조금 작게 만들었고,한동안 매출 하락을 막을 수 있었다.
이것이 조사의 위력이다. 통계적으로 얼마나 정확한가를 따진다면 몇 백명 이상 조사해야겠지만 과학적인 통계원칙 이전에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흔히들 거짓말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까만 거짓말,하얀 거짓말,그리고 통계의 거짓말이 그것이다. 통계의 거짓말이란,예를 들어 10명을 조사해 놓고 '국민의 몇%가 이런 의견을 갖고 있다'란 식으로 터무니없이 일반화해 버리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이렇게 통계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그렇다고 성실히 수행한 조사 결과까지 무조건 불신하고 냉소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마음이 허탈해지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사회가 급속하게 합리화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최근에는 기업체나 정부,각 기관들이 조사 자료를 근거로 의사결정을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아 이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한경 에세이'에 조사전문인이 필자가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하는데,앞으로 조사와 관련된 다양한 뒷 얘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독자들이 우리 사회의 또다른 분야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