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자'라는 깊은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느다란 희망의 불빛 하나는 발견한 것 같습니다." 지난 9월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고 직장까지 잃었던 김환진씨(45·가명). 김씨에게 최근 몇년은 악몽과도 같았다. 결혼 1년 만인 98년 10월. 아내는 병원비 3천만원과 아들 하나를 남긴 채 먼저 세상을 떴다. 감기인줄 알았던 아내의 병은 뜻밖에도 '급성심근염'. 극심한 가슴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인공호흡기를 떼내자 아내는 그의 손을 잡은 채 숨을 거뒀다. 패혈증으로 무균실을 들락거렸던 갓난 아들의 치료비가 이미 5천만원을 넘어선 터였다. 대리운전,막노동,노점상 등 닥치는 대로 몸을 부렸지만 겨우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연체이자가 쌓이면서 그는 곧 신용불량자가 됐다. "자포자기였어요. 나쁜짓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낮에는 자고 밤에는 술로 버텼다. 그렇게 한 8개월 보내자 훌쩍 자란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은 이미 자폐증에 패혈증까지 재발해 있었다. 김씨가 마음을 고쳐먹고 취직을 결심한 게 그때였다. 그러나 파산자란 꼬리표가 발목을 잡았다. "오기로 나는 파산자라고 솔직히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결국 그의 자신감과 적극성을 눈여겨 본 한 외국계 보험사의 지점장이 신원보증까지 서줬다. 파산자로 낙인찍혀 버림받았던 신용불량자가 '신용'으로 일자리를 얻은 셈이다. "사회가 결과만을 놓고 평가하는 것이 문제지만,좌절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