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던 지난 1970년대.각급 학교에서 빼놓지않고 열린 행사중 하나가 저축표어 만들기였다. 저축왕 선발대회나 저축포스터 그리기도 단골 메뉴였다. 한푼 두푼 모아 큰 돈을 만드는 저축,그것이 가정과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지고선(至高善)이었다. 당시는 정기예금 금리가 연10%를 훨씬 웃돌아 저축은 실제로 개인과 국가를 위한 좋은 투자방식이었다. 하지만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든 지금도 저축은 여전히 가장 선호되는 투자대상으로 자리하고있다. 작년 2분기 저축률은 35.9%로 전분기대비 오히려 4.4%포인트 높아졌다.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다. 미국(13.5%)이나 일본(25.6%)의 저축률이 하향추세를 그리는 것과는 정반대다. 때문에 지난 2003년 현재 가계 자산구조에서 현금과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57.2%.반면 주식투자비중은 7.6%,채권은 4.1%에 불과했다. 주식비중이 31.6%에 달하고,현금과 예금비중은 13.2%인 미국과는 상반된 결과다. 이 같은 현상은 초·중학교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우리 교과서는 저축의 미덕과 소비절약의 중요성만 강조하고 있다. '투자'란 단어는 찾아볼 수도 없다. 중학교 교과서에 주가를 평가하는 대표적 척도인 PER(주가수익비율)가 등장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투자개념에 관한 한 현격한 수준차가 드러난다. 건전투자 교육이 실종상태인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목돈 만들기는 저축 아니면 투기다. 이른바 '모 아니면 도' 식이 우리의 투자문화인 것이다. 문제는 은행금리가 연 3%에 불과한 지금 저축만으로는 노후는 물론 현재 생활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11월 현재 저축성 예금의 평균 금리는 연 3.4%. 1억원을 은행에 넣어놓으면 세금 16.5%를 빼고 월 23만7천원씩,1년에 2백85만5천원을 이자로 받게 된다. 대기업 부장급 사원의 퇴직금이 평균 2억원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은행 이자 수입이 47만5천원 정도다. 정부가 정한 2인 가구의 최저생계비인 월 66만9천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은퇴한 부부가 퇴직금으로는 최저생활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은행은 현금보관소로 전락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저축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라고 강조한다. 국내 기업이 투명해지고,금융시장이 선진화돼 안전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가 많아졌다는 지적이다. 무리지어 땅을 보러 다니고,증시에 떠도는 루머대로 종목을 사서 가슴 졸이던 게 투자로 불렸던 몇 년 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얘기다. 국내기업이 주주중시 정책을 펴면서 배당수익률이 높아진 게 단적인 예이다. 올해 5% 이상의 배당수익을 보장해 줄 것으로 보이는 상장업체만 1백16개에 달한다. 그렇다고 꼭 목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적립식 펀드를 이용하면 적은 돈으로도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부동산펀드를 이용하면 상가나 토지에도 간접투자할 수 있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짠다면 원금을 손해볼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 경기가 바닥을 헤맨 지난해도 채권에 투자한 사람은 평균 7.4%,주식에 간접투자한 사람은 4.4%의 수익을 냈다. 정기예금 금리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이다. 이제 '저축=미덕'이란 시대는 지나갔다. 한국투자증권 고객자산관리부 박미경 부장은 "돈을 쌓아놓는 것은 개인의 재산증식이나 노후 대비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무조건적인 저축보다는 증시 등에 건전한 투자를 하는 것이 개인은 물론 기업에도 힘을 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초저금리 시대를 극복하며 밝은 노후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건전한 투자문화가 확립돼야 한다. 조주현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