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경기상황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국회가 경제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극한적인 당쟁에 몰두하느라 경제의 불확실성을증폭시키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야는 지난 임시국회 회기내내 이념적 문제를 놓고 싸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허비하고 폐회일에 임박해서야 경제 관련 주요법안들을 통과시키거나 2월 임시국회에 넘김으로써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가중하고 있다.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데도 예산안은 작년 12월31일 자정에 임박해서 국회를 통과하는 바람에 올해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의 조기 집행에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또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부동산중개업법 개정안은 등록세.취득세.양도세 등의 골간을 바꾸는 주요한 내용으로 이미 여러차례 국민들에게 발표됐는데도 2월 임시국회로 넘겨지면서 언제, 어떻게 시행될지 불투명해지는 등 세금관련 혼란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집단소송제 역시 기업들에게는 상당히 민감한 내용인데도 뒤늦게 집단소송법 개정을 놓고 혼선을 빚다가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집단소송과 관련한 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2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올해 예산안, 종부세법안, 지방세법안, 기금관리법, 민간투자법 개정안 등 경제관련 법안들이 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했으나 그 후폭풍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런 후폭풍은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 과세제도 혼란의 소용돌이 정부는 오는 7월부터 부동산중개업소들이 실거래가에 의한 계약내용을 시.군.구에 반드시 통보하도록 지난 임시국회에서 부동산중개업법을 개정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정부는 이 제도의 도입에 따른 등록세.취득세의 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지자체들의 조례개정을 유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여러차례 발표하고 관련준비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납세자들도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회는 당쟁에 힘을 쏟느라 제대로 심의도 못한 채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키로 결정함으로써 이 제도의 시행은 내년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 관계자는 "실거래가 신고제는 등록세.취득세.양도세의 과표를 현실화함으로써 과세형평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불확실해졌다"고 말했다. 또 부동산 등록세율을 3%에서 2%(개인간거래는 1.5%)로 내리는 내용의 지방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당초 예상보다 훨씬 지연되면서 1월1일부터 거래세를내린다는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관보에 게재돼야 공포되는 만큼 1월1일부터 시행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새해 시작 보름전에는 국회를 통과해야 정상적인 절차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세법 개정안에는 농어민에 대한 소득세 과세를 중단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는데, 법률이 시행되기 이전인 2004년 소득에 대한 올해 5월 과세시에 면세를소급 적용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법률시행 이전의 사안에 대해 소급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을 근본으로 하는 법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정부가 이미 2004년농업소득부터 면세한다고 발표한 만큼 법리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같은 맥락에서 소득세법.조세특례제한법.법인세법 개정안의 국회통과가 뒤늦게이뤄져 관련 시행령은 이달 중순에나 공포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법률과 시행령의 시행시기가 일치해야 하지만 법률 개정안의 국회통과가 지연되면서 시행령도 늦어졌다"면서 "지방세법상 농업소득과 같은 소급적용 문제가 소득세법 등에도 나타날 수 있으나 과세가 아닌 면세 사항인 경우에는 법리에 어긋나더라도 소급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경기활성화 예산조기집행에도 차질 내년 예산안이 올해를 불과 한시간 남짓 남겨두고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되면서'준예산'을 편성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는 면할 수 있게 됐으나 통과시점이 너무 늦어 내년 예산 조기집행에 차질이 예상된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내년 상반기에 100조원, 1.4분기에만 50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등 적극적인 재정집행 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나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일자리창출 등 주요사업의 상당수는 제대로 집행되기 힘들 전망이다. 각 부처에서는 미리 사업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그동안 예산안이 확정되지 않아구체적인 월별 집행계획을 짜지 못한 상태다. 이제부터 실무자들이 서둘러 계획을 세우더라도 1-2월 집행은 물리적으로 쉽지않다는게 기획예산처의 설명이다. 특히 일자리창출사업은 해당 부처의 사업계획서가 준비되지 않아 시간에 쫓기게됐고 지자체 보조사업도 본예산을 잡지 못해 내년 상반기를 허송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공모사업도 사업기획과 공고, 신청 등을 거치는데 물리적 시간이 필요해연초에는 진행이 힘들게 됐다. 아울러 민간투자법, 기금관리기본법 개안안 국회처리가 지연돼 정부가 올해 하반기 경기활성화의 핵심대책으로 설정한 종합투자계획의 준비도 늦어지는 등 차질이빚어지고 있다. 정부는 상반기에는 예산을 조기에 집행해 경기위축을 막고 하반기에는 이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건설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종합투자계획을 강력히 시행한다는 방침이나 이 계획은 준비시간이 적지않게 걸리는 만큼 하반기에 제대로 집행되기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 집단소송제 등 기업관련 제도들도 혼란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집단소송법 공포일인 작년 1월20일 이전의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집단소송제 대상에서 2년간 제외하는 방안을 확정했으나 법사위에서 무산됐다. 법사위는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방안을 다시 논의한다는 방침이지만 그 전에 집단소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2년간 유예방안이 확정돼 법률이 개정되면 그 이전에 발생하는 집단소송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인지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미 이 법 시행이 예고된지 4년이나 지났는데, 문제점 등에 대해 사전에제대로 파악해 미리미리 고치는 신중한 모습은 정부나 국회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는것도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집단소송법은 지난 2000년 10월께 진념 당시 재경부 장관이 발표했고 지난 2001년 12월에는 당정협의회를 통해 공표됐을 뿐 아니라 국회를 통과해 입법이 완료된지는 1년이 지났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점은 무엇인지, 보완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심사숙고해 미리 결정해야 하는데, 법시행에 임박해서야 갑론을박하다가 기업들과 주주들에게 큰 혼란만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또 임대아파트 의무 공급을 골자로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은 당초에 4월에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국회 건교위는 내년 1월 공청회를 거쳐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어서 시행시기가 당초 예정보다 늦어지게 됐다. 사업자들의 경우 관련준비를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법률의시행시기 지연은 큰 혼란을 일으킨다. 내년 4월로 예정돼 있는 2단계 방카슈랑스(은행창구를 통한 보험판매)도 정부간이견과 국회의 개입 등에 따른 혼란으로 아직도 확정안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주요한 정책들의 방향을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스런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들이 경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국민들도 국회 뿐 아니라 정부를 더이상 믿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주종국.윤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