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자문기구조차 현 정부의 문제점을 '이념논쟁'으로 꼽을 만큼 노무현 정부는 집권 2년차에도 '토론공화국'이라는 힐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가장 나쁜 상황으로 치닫는 데도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은 과거사 문제와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른바 '개혁 아젠다'에 매달렸고,그럴수록 기업 근로자 자영업자 등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더 불안해지면서 경제는 불확실성에 휩싸여갔다. 올해는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문제를 차근차근 현실적으로 풀어가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기대에 못미친 분권형 시스템 노무현 대통령은 국토 균형발전과 함께 분권형 국정 운영을 추구했다. 경제는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과학 및 산업기술 분야는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에게 맡기는 식으로 국정을 분담했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킴으로써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심도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각 부처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부는 주요 사안에 대해 책임있는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성장과 분배' 논란 등에 휩싸이며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지 못했다.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 문제를 놓고 이 부총리와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설전을 벌인 것이나 국민연금을 종합투자계획(한국판 뉴딜)에 동원하는 문제에 대해 이 부총리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맞붙은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과정에서 경제부총리의 리더십은 상당히 손상됐다. 지난해 12월10일 이헌재 부총리가 현안보고를 위해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 "사표를 냈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었다. 얼마 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달리는 말의 기수는 바꾸지 않는다"며 노 대통령이 이 부총리를 유임할 것임을 기자들에게 말한 뒤에야 수습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라" 최근 들어서는 정부와 집권 여당이 협의해 결정한 정책에 대해서도 여당 의원들이 반기를 드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여당 지도부가 당정회의를 통해 기업의 과거분식에 대해서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적용을 2년 유예하기로 합의했는 데도,정작 국회 법사위에서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반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노 대통령이 집권 여당을 '장악'하지 않겠다는 것은 당·정 분리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당 지도부의 결정과 무관하게 자기 목소리만 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정 협의를 통한 정책결정 메커니즘은 퇴색되고 여당 의원들의 각개전투식 의견 개진으로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쌀 협상에서도 원칙을 관철시키기보다는 여론을 살피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단호한 정책결정을 통해 사회 효용을 극대화하는 수권능력 발휘를 기대해온 국민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정부는 구체적인 성과를 쌓아가는 책임정부의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며 "당이 국민의 요구를 정책으로 전환시키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