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의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는 최근 "'아메리카 주식회사'는 운영상의 효율을 높이는 데는 강점을 발휘하지만 그로 인해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공을 놓쳐 버렸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들이 단기 주주 이익의 극대화 등 효율성만을 너무 강조해 기업 경영의 핵심인 성장 전략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이다.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에서는 로치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성장이 기업경영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 엔론의 회계부정사건 이후 한때 각광받던 재무전문가 법률전문가 등 관리자형 CEO 대신 성장을 추구하는 창업가형 CEO가 주목 받는 것은 물론이다. 10년간의 장기불황을 벗어나고 있는 일본이나 연간 10% 가까이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위험을 과감히 무릅쓰는 창업가 정신'이 CEO의 첫번째 덕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민간경제연구기관인 컨퍼런스보드가 전세계 40개국의 CEO 5백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8%가 혁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창업가정신을 기업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도 창업가형 CEO가 세계적으로 뜨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창업가형 CEO "돌격 앞으로" "관리를 중시하는 경영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은 성장의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한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국내 재계 및 학계 인사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세계적인 저성장 시대에 성장은 모든 기업의 고민이자 과제가 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멜트 회장은 "앞으론 창업가형 CEO가 이끄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 성장의 리더십을 갖기 위해 지난해 9월20일을 '성장의 날'로 정했다. 이멜트 회장은 성장을 이끌 협의체(Commercial Council)를 구성하는 한편 성장을 중심으로 한 사업포트폴리오를 마련,공격 경영에 나섰다. 올해부터는 지난 3년간 한자리 수대에 그쳤던 이익증가율을 다시 두자리 수대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다. 중간유통비용 등 낭비요소를 줄이고 고객 중심의 '슬림형 린(lean)경영방식'으로 매년 20%씩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이나 '커피가 아니라 문화를 판다'는 감성마케팅으로 11개 점포에 그쳤던 스타벅스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성장시킨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도 미국의 대표적인 창업가형 CEO로 꼽힌다. 중국 재계를 이끌고 있는 '스타 CEO'도 대부분 창업가형 CEO다. 양웬칭 롄샹 컴퓨터 사장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회사보다 훨씬 덩치가 큰 IBM의 PC사업부문을 17억달러에 인수해 단숨에 세계 3위의 PC업체로 올려놓은 인물.롄샹그룹의 창업주인 류찬즈 회장의 철저한 신임을 받으며 양웬칭 사장은 재무건전성에 타격을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무릅쓰고 과감한 베팅을 감행했다. 프랑스 톰슨사의 TV사업부문을 인수합병하고 알카텔의 휴대폰 사업부문도 사실상 인수한 TCL의 리둥성(李東生) 회장도 기술혁신을 통해 양적 질적 성장을 꾀하는 대표적인 창업가형 CEO로 통한다. 일본에서는 회사를 무서운 속도로 성장시키며 최근에는 프로야구 구단 인수에까지 나선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과 라쿠텐(樂天·전자상거래업체)의 미키타니 히로시 사장 등이 창업가형 스타 CEO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잡아라 세계의 창업가형 CEO들이 무작정 성장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CEO는 성장 전략을 제도화,체계화하고 핵심사업과 관련된 인접 사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짜낸다. GE의 경우 지속 성장을 위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한해 27억달러의 연구개발비를 사용하고 있다. 델 컴퓨터는 회사의 핵심 전략인 '직접 판매 기법'을 반복 적용해 지속적 성장을 꾀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 기업들을 인수합병할 정도로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는 중국 기업들도 문어발식으로 관련 없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중국 기업인들은 무리한 외형 확장으로 IMF 사태를 겪었던 한국 기업인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지속가능한 성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