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남편들은 과묵하다. 밖에선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도 집에선 입을 꽉 다문다. 오죽하면 경상도 남자가 가정에 돌아와 하는 말은 "나다,아는(아이는),먹자,자자"라는 네 마디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유머라지만 실은 부부생활의 썰렁함과 무미건조함을 보여주는 예에 다름 아니다. 경상도 남자뿐이랴.인천발전연구원에서 시민들의 가족 실태 및 가치관을 알아봤더니 부부의 절반 이상이 하루 30분도 채 얘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말이 없는 건 부모 자식도 마찬가지다. 대학생 32%는 아버지와 하루 한 마디도 안하고,초등학생도 30% 정도만 부모와 30분 이상 말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러니 부모 자식 모두 서로 이해하기 어렵다. 부모는 부모대로 애들의 생각을 몰라 답답해 하고,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 아빠와는 말이 안통해 얘기하기 어렵다며 자기들 세계 속에 숨어버린다. 부부와 자녀 할 것 없이 한 집에 살면서 얼굴을 맞댈 뿐 각기 어떤 고민에 빠져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남편과 아내,부모와 자식이 속을 터놓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먹고 사느라 피곤해서''쑥스러워서''새삼스럽게 뭘'이 그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눈에 안보인다. '고마워' 한마디는 꽁꽁 언 마음도 녹인다. 부부싸움이 커지는 건 '미안해' 한 마디를 못하거나 미루는 탓인 경우가 많다. '천만번 또 들어도 기분좋은 말'이 '사랑해'다. 보건복지부가 늘어나는 이혼과 가족해체 현상을 막고자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운동'(고미사 운동)을 펼치겠다고 나섰다. 세 마디만 잘해도 어지간한 갈등이나 오해는 풀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만큼 범국가적 캠페인을 벌이겠다며 공익광고와 고미사 노래도 만들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가을부채처럼 버려진 듯,허허벌판에 홀로 선 듯 쓸쓸하고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족의 '옆에 있어줘 고맙다''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사랑한다'는 말만큼 용기를 주는 건 없다. 세상에 지나치면 안되는 것 세 가지는 '이스트 소금 망설임'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은 물론 주위의 가까운 사람끼리도 '고미사'만큼은 망설이고 아끼지 말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