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해일 피해국을 돕기 위한 지구촌의 온정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경쟁하듯 벌어지는 구호금 행렬의 뒤안길에는 입맛이 씁쓸한 측면도 적지 않다는 게 유엔과 산하 전문기구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물론 열흘만에 20억 달러의 지원 약속이 쏟아진 것은 피해 규모가 엄청난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눈치 보기'와 '생색 내기' '자존심 지키기' '체면 차리기' 의 결과라는시각도 만만치 않다. 민간이 아닌, 정부차원의 지원 약속들에는 이런 측면들을 고려한 흔적들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증액 경쟁에는 모종의 정치적 의도도 엿보인다. 일본이미국을 제치고 5억 달러를 선뜻 기부한 것, 유럽 국가들이 미국과 벌이는 지원계획주도권 경쟁 등이 그 실례들이다. 몇몇 관측통들은 일본이 5억달러를 낸 데는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야심을 깔고 있다고 의심한다. 지진해일을 기화로 전통적인 텃밭인동남아 국가들과의 결속 강화를 노린다는 해석도 있다. 유엔 관계자들은 `소리없는 재난'이 극빈 개도국에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있음에도 세계가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작금의 구호 열기는 순수하게만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구촌의 빈곤과 기아를 대푹 줄이기 위해 각국 정상들이 거창하게 마련한 밀레니엄개발목표(MDG)는 여전히 자금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0) 총장이 아프리카의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확산을막기 위해 오는 2005년까지 300만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기위는 야심적인 '3 바이 5' 계획도 지원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 회원국들이 약속한 분담금을 연체하고 있는 것은 유엔과 산하 국제기구들의 해묵은 골칫거리다. 실제로 코피 아난 총장은 분담금 납입 독촉이 주요 일상업무가 됐고, 회원국으로부터 돈이 들어오면 일일 브리핑의 주요내용으로 공지될 정도다. 분담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은데 따른 재정난으로 유엔은 주요 업무에 차질을 집고 있다고 호소한다. 연체액은 지난 2003년 4천300만달러에서 8천800만달러로 급증했다가 지난해 가을 현재는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7천500만달러에 이른다. 연체의 부담에서 벗어나 있는 국제기구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세계식량계획(WFP) 처럼 인도주의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기구들의 재정마저도 신통치 않다. 돌발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쏟아지는 원조에도 '부도'가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총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한가지 우려를 품고 있다"면서 "나중에 가면 약속된 모든 돈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대표적 사례는 남아시아 지진.발생일에서 정확히 1년전인 2003년 12월26일 이란의 밤에서 발생한 대형 지진. 각국이 원조 약속을 남발했지만 이란의 대통령은 정작 들어온 돈은 일부분에 불과했며 불평했다고 한다. 얀 에겔란트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HCA) 국장은 "밤에 거주하는 이재민들은아직도 임시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좌절하고 있다"며 유엔은 해당국가들에게약속을 이행할 것을 계속 재촉할 방침이라고 발언했다. 아난 총장은 6일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원조국 회의에서 참석, 국제사회에 구호금을 촉구할 예정.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높아 약속된 돈의 상당부분이들어올 가능성이 높지만 다 들어오지 않는다해도 놀라지 않으리라는 것이 그의 지적. 아난 총장이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피해의 완전 복구에는 5-10년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재난 구호에는 지속적 관심이 필요함을 뒷받침한다. 유엔 관계자들이 냄비처럼 끓는 지구촌의 온정을 미덥지 못해 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제네바=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