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17대 국회가 첫 해 활동을 마감했다.


지난해 여의도 정가엔 초선 의원 비율이 63%에 이를 정도로 '새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여야간 정쟁과 당파싸움이란 구태는 여전했다.


새해 예산안은 법정 시한을 거의 한 달이나 넘겨서야 겨우 통과됐고 이른바 '4대입법'을 둘러싸고 여야의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졌다.


선량들의 건전한 정책 대결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국회는 희망을 주지 못한 것이다.


2005년 벽두에 여야 초선 의원이 새해 정국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털어놨다.


산업자원위 소속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과 문화관광위 소속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4일 국회에서 만났다.


[ 한나라당 대표 논객 박형준 의원 ]


△1960년생

△대일고

△고려대 대학원(사회학 박사)

△중앙일보 기자

△동아대 교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

△지방분권부산운동본부 집행위원장

△17대 국회의원(부산 수영)


[ 열린우리당 386 리더 이광재 의원 ]


△1965년생

△원주고

△연세대 법학과

△노무현 국회의원(13대) 보좌관

△노무현 대통령 후보 기획팀장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17대 국회의원(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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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의원=17대 국회 첫 해인 지난해는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많이 보여주기도 했어요.


세미나를 알리는 포스터가 의원회관 벽에 워낙 많이 붙어있어서 어느 중진 의원이 "벽이 왜 이렇게 지저분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올해는 정쟁 없이 대화를 통해 경제 중심,대안 중심의 의정활동을 하겠습니다.


○박형준 의원=초선이 3분의 2나 차지해 나름대로 정책활동을 의욕적으로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아직도 이분법적 구도와 정쟁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초선으로서 한계도 느꼈어요.


지난 한 해가 '네거티브 정치'였다면 새해는 '포지티브 정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이 더 잘하면 야당도 같이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에서 가장 질이 나쁜 것은 자기도 못 하면서 남까지 못 하게 방해하는 진흙탕 싸움입니다.


○이=최근 82개국을 상대로 한 마케팅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북핵위기로 나타났어요.


또 경제문제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 큰 문제예요.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해 사모펀드법을 통과시키는 등 경제가 돌아가는 수단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가동시켜야 합니다.


당내 의정연구센터를 중심으로 외환위기 때 실직한 젊은 인력들로 구성된 '제2라운드 인생클럽'을 이달 중 발족할 생각입니다.


대공황 때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라고 했어요.


우리는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박=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70% 이상이 낙관보다 비관적 전망을 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선 국민들의 에너지를 제대로 모을 수 없지요.


국민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 산업화를 이뤄낸 경험을 통해 세계 속에서 한국이 강중국 또는 강소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환기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당내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를 안정화시켜서 정책정당으로서의 발전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여의도연구소의 모토를 '이기는 한국,그늘없는 세상'이라고 지은 것도 이런 의미입니다.


◆이=이젠 정치도 '정당'이라는 직업병을 극복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 아마추어리즘'을 이겨내야 해요.


초선들이 국회에 대거 진출한 것이 한편으로는 정치를 더욱 어렵게 만든 점도 있습니다.


초선들이 나쁜 것부터 배워선 안돼요.


정치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을 스스로 갖고 자신부터 고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정치엔 게임의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 게임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권투경기가 아니라 기록경기란 점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죠.


○박=정치권에 와 보니까 오도된 자기확신이 문제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의원들의 사고 저변에 깔린 것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것 아닙니까.


자연히 적개심과 분노가 그 배경에 있고 상대방을 투명하게 바라보지 않게 되죠.정당 문화에도 문제가 있어요.


양당의 강경파가 적대적 생각을 확산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발전하려면 온건하고 합리적인 세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환경이 우선 만들어져야 합니다.


특히 이 부분은 여당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유연하고 겸손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난해가 힘들었던 것은 정부와 여당이 스스로 설정한 아젠다,즉 개혁작업을 급하게 추진하니까 야당 입장에서는 그것을 막는 것을 야당의 역할로 생각했다는 거예요.


내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유연함과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어찌보면 정치적 경험이 미숙한 초선이 1백87명이나 되는 것이 정치실종의 원인일 수 있어요.


○이=우리 사회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진화-학습-탈피'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옛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또 조급증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각 정당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양 극단세력과 결별해야 합니다.


예컨대 개혁진영은 "프랑스가 공무원 파업을 허용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고 자신들 주장에 맞는 극단적인 사례만 내세웁니다.


조급증을 가지고 밀어붙이니 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박=여야가 실질적 논쟁보다는 형식 싸움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어요.


지난해 정부와 여당이 설정한 '개혁 아젠다'가 과연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는지 의문입니다.


특히 경제에도 도움이 안됐어요.


다행스러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자세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해의 화두도 대립보다는 상생 가능한 아젠다를 설정하고 이를 살려내는 것이 돼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2004년 정치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고 봐야죠.리더십에 대한 얘기를 하지요.


새 시대의 리더십에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우선 대결의 문화에서 대안의 문화로 가야 합니다.


둘째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을 확고히 가져야 해요.


셋째로는 과거 정치가 권력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정치도 서비스업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정책능력 면에서 한나라당이 굉장히 뒤처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컨대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의 경우 제가 청와대 상황실장 시절부터 구상해온 겁니다.


기금의 여유자금을 활용해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것이죠.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한나라당이 '기금사회주의'니 하며 몰아붙였는데,야당도 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야당생활을 너무 오래 했는지 정책기능이 떨어져요.


○박=따끔한 지적 고맙습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지난 2년간 제대로 된 비전이나 리더십을 보여줬는지 의문이에요.


새 시대 리더십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로 국민을 어떻게든 함께 이끌고 가며 통합을 이뤄내는 능력입니다.


둘째로는 정책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홍보 능력입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기금관리기본법의 경우에도 여당이 국민들에게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어요.


언론도 정쟁 기사보다는 정책 기사를 많이 써야 합니다.


○이=일각에서 분권형 헌법 개정 논의가 있지만 지금 얘기할 시점은 아닌 것 같아요.


개헌론을 수년 전부터 들으면서 느낀 것은 우리 사회에 권력 중독 현상이 있다는 겁니다.


과거 대통령과 지금은 굉장히 달라요.


권력 중독 현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박=한나라당이 거듭 나려면 '반노(反盧)' 정서에 의존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비전과 대안을 스스로 마련해 새로운 메신저가 돼야죠.특히 개헌론은 자연스럽게 제기되지 않고 권력게임으로 변질되면 하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지금 전환기를 잘 넘기려면 국민적 지지를 제대로 받고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내는 리더십이 필요한데 개헌론이 잘못 전개되면 부작용만 일으킬 우려가 있어요.


○이=한나라당 일부 젊은 초선들은 지도자로 성장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더군요.


정책토론회도 무척 열심히 하고요.


다만 열린우리당이 너무 권위가 없어서 탈이라면 한나라당은 지나치게 권위적인 문화가 문제예요.


당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자율성을 주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입니다.


○박=열린우리당 의원 개개인을 만나보면 친근감이 느껴져요.


다만 서로 대결하는 정당문화가 있긴 하지만요.


여당의 강점은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에서 봤듯이 역동성이 아닐까 싶어요.


한나라당의 경쟁 상대는 노 대통령이 아닙니다.


다음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당 내부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게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이=올해 제 개인적으론 4월에 북한에 묘목과 연탄보내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중요한 계획입니다.


이것으로 시작해서 남북 대화가 진전되길 희망합니다.


박 의원은 어떠신가요.


○박=국가 비전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단순한 이론적 비전이 아니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정당이 활력을 되찾는 구체적인 비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리=박해영·양준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