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그룹 김은선 부회장(48)은 부친인 김승호 회장에 이어 그룹 경영을 맡을 예정이지만 좀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인터뷰를 한 적도 없다. 소리나지 않게 그룹을 이끌어 왔다. 제약 업계에서 여성이 최고 경영자에 오르기는 김 부회장이 처음이다. 재계 전체로도 흔하지 않은 사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행보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에 노출되는 것 조차도 꺼려했다. 그런 김 부회장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지난 3일 열린 보령그룹의 '비전 선포식'은 그의 변신을 확인하는 첫 무대였다. 김 부회장은 이날 비전 선포식을 진두지휘했다. 그룹이 앞으로 5년 동안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였던 만큼 그의 역할에 관심이 쏠렸다. 그는 이날 보령그룹을 오는 2009년까지 매출 1조원 규모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비전 선포식을 마친 직후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언론과는 첫 대면이었다. "기업을 둘러싼 비즈니스 환경이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령은 빠르게 생각하고,빠르게 행동하고,빠르게 변화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김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으로 전문성을 살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 체질을 만들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국내 제약산업이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룹의 핵심인 보령제약의 행보에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제약은 성장 잠재력이 큰 산업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M&A(기업인수·합병)를 통해 보령제약의 규모를 더 키우고 싶습니다.물론 신약 개발 등 연구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김 부회장은 국내 제약산업이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발전이 더디고 경쟁력이 다소 약한 측면이 있다며 다국적 제약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회사 덩치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열사 경영에 깊이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경영인이 경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온힘을 다할 것이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계열사별로 하기 어려운 사업은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교통정리를 해주고 막힌 것을 뚫어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경영수업을 쌓아왔다.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지난 82년 보령제약에 입사,2000년 보령제약 회장실 사장을 거쳐 2001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김승호 회장도 김 부회장에게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김 부회장이 이날 인터뷰를 꺼리자 김 회장이 이를 권하기도 했다. 그룹 인사가 발표된 후 김 부회장은 비전 선포식장에서 신임 임원 등에게 임명장을 직접 수여했다. "남에게 존경받고,스스로 자존심을 가질 수 있고,일할 맛이 나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김 부회장은 보령의 청사진을 이같이 제시했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