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榮奉 < 중앙대 교수ㆍ경제학 > 광복을 이룬지 꼭 한 갑자를 맞이하는 2005년 새벽이다. 기적과 같았던 60년 공적을 돌아보고 우일신(又日新) 새 갑자를 출발시키는 마당이니 실로 경축하고 다짐할 때다. 그런데 새해벽두 '희망'을 말씀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지금 우리는 과거 반만년을 반민주 수구집단이 저지른 치욕의 역사로 규정하고 극심하게 반목과 좌절을 키우며 한해를 시작하는 중이다. 금기(禁忌) 많은 새해아침이지만 쓴 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를 부정하고 지리멸렬하는 집단이 지르는 함성에 무슨 기(氣)가 실리겠는가. 60년 전의 한국은 오늘날 이라크만치나 분열되고 에티오피아처럼 가난했던 식민지해방국이었다. 좌익 우익들이 유혈난투를 일삼다 침략전쟁에 수백만명을 희생시킨 다음 혼연일체의 독립국이 됐다. 그 뒤 피땀의 노력으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반독재 투쟁세력이 민주절차에 따라 집권하는 정치발전도 했다. 서구문명국들이 수백년에 걸쳐 쌓은 정치 경제 사회발전을 열 배는 빨리 압축해 이룬 것이다. 우리의 압축된 역사는 자랑스러웠지만 이 것은 과연 축복인가. 조로증(progeria)을 앓는 아이는 순식간에 숙성하지만 노숙과 병사과정도 10년여에 끝내버린다. 국가유기체도 오염되면 질병을 앓지 않을 수 없다. 근년에 우리는 압축성장한 것 만큼이나 빨리 성장원동력을 잃고 체질만 급격히 노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어쩌다 이따위 질병에 걸렸는가,향후 치유할 시간은 있는 것인가. 그릇이 부족한 부류에게는 어떤 영광도 고뇌의 대상이 되는 모양이다. 한국 경제의 노화증세는 실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고속성장의 원천인 제조업의 비중은 이미 26%로 내려앉았고 매년 그 하락추세가 심해진다. 1970년 4.53명이던 여성 1인당 출산인구는 현재 1.17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이 된 반면,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중은 1970년 3.1%에서 현재는 8.7%,2026년에는 20.0%에 이를 전망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짧아진 호황,길어진 불황,세계 평균보다 낮은 경제성장률,고령화하는 근로자,설비투자 하락,세계일류상품 수의 하락,블루칩 주식 수의 하락 등 한국 경제가 겪는 7가지 조로화 증세를 보고했다. 이런 통계적 사실보다 우려되는 것이 경제체제의 마인드다. 작년 여름 한국은행 총재는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하고 일은 덜하고 욕구만 분출하는 사회풍토로 경제체질이 노화와 산성화 현상을 거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기업은 수습과 탈출을 먼저 생각하고 부채투성이 가계는 소비능력을 잃고 있다. 반면 정부는 사회복지,취업지원,농촌보조,자주국방,지역균형,뉴딜사업 등 무제한으로 국가부담을 늘리려 한다. 경제체질의 산성화를 막는 길은 오직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 뿐이나 오늘의 정치는 시장의 영토를 줄이는 데만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 경제는 영글지 못한 주제에 선진국만큼 노화하고 그들 이상으로 경계를 안한다. 이제 우리가 30여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 배수진을 치고 경제전쟁에 결사항전한다 해도 남은 시간은 그저 촌분(寸分)일 것이다. 그 기회마저 놓친다면 우리의 후대는 아마 투혼을 싫을 몸체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형편없는 조상이 되려하는가. 새해를 맞아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을 우리 경제를 새롭게 도약하는 해로 만들어 나가자"고 했다. 그런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첨단산업과 전통산업,정규직과 비정규직,수도권과 지방,상·하위 계층간 심화된 격차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며 성장과 분배가 따로없고 양보와 타협이 필요한 '동반성장'을 또한 다짐했다. 도약은 모두가 잘되는 성장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따뜻한 신년사지만 늙은 몸체를 살리지 않는 한 누구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음을 말하지 않는다. 새해에는 모든 국민이 보다 현명해지기를 희망한다. 교언(巧言)을 경계하고 경제를 더 이해해서 스스로 기회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