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세계 자원전쟁] <3> 호주 사막의 '백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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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붉은 색이다.
흰색 운동화는 흙 속에 섞인 녹슨 철분을 단숨에 빨아들이며 붉게 물들었다.
수은주를 섭씨 43도까지 끌어올린 뜨거운 태양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불그스레한 모습이다.
호주 서부 최대의 도시 퍼스에서 북쪽으로 1천2백km.뉴먼 광산의 첫 모습은 그랬다.
< 사진 : 세계적인 철광석 광산이 밀집해 있는 서호주의 필바라 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간 광구 확보전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가 세계 최대 광산회사인 BHP빌리턴과 합작 투자한 포스맥 광산의 전경 >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광산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낡은 지프를 몰고 광산으로 향하던 BHP빌리턴의 대외업무 담당 존 크롤리 씨는 "회사 실적이 좋아져 보너스를 받았다"고 좋아하면서도 "돈을 많이 받는 것은 좋지만 아시아계 손님들이 부쩍 늘어 업무량이 많아졌다"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최근 누가 왔다 갔느냐는 질문에 "바로 어제 중국 제철소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대답했다.
광산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기자가 처음 찾은 곳은 BHP와 포스코,일본의 미쓰이 이토추가 합작 투자한 포스맥(POSMAC).총 6개 광구로 나뉘어져 있는 이 노천 광산은 가장 큰 광구가 가로 5.8km에 세로 2.5km일 정도다.
초대형 굴삭기를 앞세워 지면에서 3백m나 파내려 간 광구 안에는 바퀴 하나가 3m나 되는 덤프트럭들이 노면의 검붉은 광석들을 쉴새없이 실어나르고 있었다.
연간 생산량은 1천2백만t.포스코는 이 광산에서 향후 20여년간 7천5백만t의 철광석을 공급받기로 하고 지난 2003년 지분 20%를 확보했다.
"당초 이곳 광산의 수명을 1백10년 정도로 봤지요.
하지만 최근 새로운 광맥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수명을 따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인근 웨일백 광산에서 만난 여성 엔지니어 폴 메이씨는 "서호주 일대의 철광석 매장량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서호주 사막내 광산들이 밀집해 있는 필바라 지역에는 포스맥 크기의 광산이 15개나 된다.
얀디 골드워시 광산을 비롯해 톰프라이스 웨일백 메사 나물디 웨스트엔젠레스 등이 3백50여km 떨어져 있는 해안가를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무궁무진한 철광석이 묻혀져 있다는 이 넓고 한적한 땅에서 한 뼘의 광구를 놓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각국 기업들이 사막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세계 현물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이 속속 호주 대륙에 상륙하면서부터다.
중국은 지난해 4월 바오산 철강을 통해 리오틴토와 철광석 개발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9월에는 4개 철강회사를 앞세워 호주 BHP사와 짐블바 광산에 대한 40%의 지분합작 투자계약을 맺었다.
또 NFC사는 호주 알도가사와 퀸즐랜드에 30억달러 규모의 알루미늄 제련소 설립합작 계약을,진추안 그룹은 WMC사와 연간 12만t 규모의 니켈 수입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정거래선을 갖고 있던 한국과 일본 업체들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1970년대부터 호주 내에 합작 광구를 가장 많이 확보해둔 일본도 적잖게 당황하는 기색이다.
중국 업체들이 워낙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통에 제때 필요한 물량을 받아가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신일본제철은 지난해 10월 리오 틴토사의 헤일크리크 탄광 지분 8%를 인수했고 이토추와 미쓰이는 BHP와 연간 1천2백만t의 장기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포스코도 여기에 뒤질세라 지난해 9월 퀸즐랜드의 폭슬리 광산 지분 20%를 사들였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개발지역으로 남아 있는 서호주의 호프다운스와 FMG 광산이 본격적인 전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철광석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데도 물량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리자 새로운 광구가 문을 열 채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시장을 선점해둔 일본,전통적으로 투자의 효율성을 중시해온 한국,선발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 거센 추격전을 펼치고 있는 중국이 사실상 필바라의 마지막 광맥을 놓고 '사막의 백병전'에 돌입할 태세다.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호주 광산업체들의 이합집산도 잦아지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10월 모 석탄회사와 지분합작 계약이 성사단계 직전까지 갔다가 이 업체가 다른 기업에 인수되면서 당초 계획을 접었다.
우선문 포스코 호주법인장은 "경쟁사들이 호주 외에 뉴질랜드의 석탄광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업계의 움직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고 혀를 내둘렀다.
남아공의 대규모 광산업체인 엑스트라다의 경우 지난해 MIM이라는 이름의 석탄회사를 적대적으로 합병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호주 3위의 광물회사인 WMC를 공개매수하겠다고 나섰다.
광산업체들이 덩치 불리기에 나서면 가뜩이나 협상력이 약한 수요업체들은 이중 삼중의 부담을 안아야 할 형편이다.
BHP빌리턴 본사의 찰리 델루카 공급담당 매니저는 "광석을 필요로 하는 업체들은 단기적인 가격 측면만 보지 말고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은근히 '훈수'까지 뒀다.
뉴먼(호주)=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흰색 운동화는 흙 속에 섞인 녹슨 철분을 단숨에 빨아들이며 붉게 물들었다.
수은주를 섭씨 43도까지 끌어올린 뜨거운 태양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불그스레한 모습이다.
호주 서부 최대의 도시 퍼스에서 북쪽으로 1천2백km.뉴먼 광산의 첫 모습은 그랬다.
< 사진 : 세계적인 철광석 광산이 밀집해 있는 서호주의 필바라 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간 광구 확보전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가 세계 최대 광산회사인 BHP빌리턴과 합작 투자한 포스맥 광산의 전경 >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광산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낡은 지프를 몰고 광산으로 향하던 BHP빌리턴의 대외업무 담당 존 크롤리 씨는 "회사 실적이 좋아져 보너스를 받았다"고 좋아하면서도 "돈을 많이 받는 것은 좋지만 아시아계 손님들이 부쩍 늘어 업무량이 많아졌다"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최근 누가 왔다 갔느냐는 질문에 "바로 어제 중국 제철소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대답했다.
광산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기자가 처음 찾은 곳은 BHP와 포스코,일본의 미쓰이 이토추가 합작 투자한 포스맥(POSMAC).총 6개 광구로 나뉘어져 있는 이 노천 광산은 가장 큰 광구가 가로 5.8km에 세로 2.5km일 정도다.
초대형 굴삭기를 앞세워 지면에서 3백m나 파내려 간 광구 안에는 바퀴 하나가 3m나 되는 덤프트럭들이 노면의 검붉은 광석들을 쉴새없이 실어나르고 있었다.
연간 생산량은 1천2백만t.포스코는 이 광산에서 향후 20여년간 7천5백만t의 철광석을 공급받기로 하고 지난 2003년 지분 20%를 확보했다.
"당초 이곳 광산의 수명을 1백10년 정도로 봤지요.
하지만 최근 새로운 광맥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수명을 따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인근 웨일백 광산에서 만난 여성 엔지니어 폴 메이씨는 "서호주 일대의 철광석 매장량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서호주 사막내 광산들이 밀집해 있는 필바라 지역에는 포스맥 크기의 광산이 15개나 된다.
얀디 골드워시 광산을 비롯해 톰프라이스 웨일백 메사 나물디 웨스트엔젠레스 등이 3백50여km 떨어져 있는 해안가를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무궁무진한 철광석이 묻혀져 있다는 이 넓고 한적한 땅에서 한 뼘의 광구를 놓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각국 기업들이 사막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세계 현물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이 속속 호주 대륙에 상륙하면서부터다.
중국은 지난해 4월 바오산 철강을 통해 리오틴토와 철광석 개발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9월에는 4개 철강회사를 앞세워 호주 BHP사와 짐블바 광산에 대한 40%의 지분합작 투자계약을 맺었다.
또 NFC사는 호주 알도가사와 퀸즐랜드에 30억달러 규모의 알루미늄 제련소 설립합작 계약을,진추안 그룹은 WMC사와 연간 12만t 규모의 니켈 수입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정거래선을 갖고 있던 한국과 일본 업체들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1970년대부터 호주 내에 합작 광구를 가장 많이 확보해둔 일본도 적잖게 당황하는 기색이다.
중국 업체들이 워낙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통에 제때 필요한 물량을 받아가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신일본제철은 지난해 10월 리오 틴토사의 헤일크리크 탄광 지분 8%를 인수했고 이토추와 미쓰이는 BHP와 연간 1천2백만t의 장기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포스코도 여기에 뒤질세라 지난해 9월 퀸즐랜드의 폭슬리 광산 지분 20%를 사들였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개발지역으로 남아 있는 서호주의 호프다운스와 FMG 광산이 본격적인 전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철광석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데도 물량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리자 새로운 광구가 문을 열 채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시장을 선점해둔 일본,전통적으로 투자의 효율성을 중시해온 한국,선발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 거센 추격전을 펼치고 있는 중국이 사실상 필바라의 마지막 광맥을 놓고 '사막의 백병전'에 돌입할 태세다.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호주 광산업체들의 이합집산도 잦아지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10월 모 석탄회사와 지분합작 계약이 성사단계 직전까지 갔다가 이 업체가 다른 기업에 인수되면서 당초 계획을 접었다.
우선문 포스코 호주법인장은 "경쟁사들이 호주 외에 뉴질랜드의 석탄광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업계의 움직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고 혀를 내둘렀다.
남아공의 대규모 광산업체인 엑스트라다의 경우 지난해 MIM이라는 이름의 석탄회사를 적대적으로 합병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호주 3위의 광물회사인 WMC를 공개매수하겠다고 나섰다.
광산업체들이 덩치 불리기에 나서면 가뜩이나 협상력이 약한 수요업체들은 이중 삼중의 부담을 안아야 할 형편이다.
BHP빌리턴 본사의 찰리 델루카 공급담당 매니저는 "광석을 필요로 하는 업체들은 단기적인 가격 측면만 보지 말고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은근히 '훈수'까지 뒀다.
뉴먼(호주)=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