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해 미국은 '명분',유럽은 '실리' 추구라는 상반된 행보를 보여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 "러시아에 대한 석유 의존도가 높은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푸틴 정부의 독재적 정치 운영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자원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유럽,에너지 확보가 최우선 과제=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푸틴 대통령의 권력 강화 움직임과 관련,어떠한 논평도 내놓지 않고 있다. 러시아 최대 석유 회사 유코스를 국유화하고 주지사 선거를 임명제로 전환하는 등 푸틴 대통령의 반개혁적 조치가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유럽 국가들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푸틴은 '명백한' 민주주의자"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유화적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는 러시아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천연가스 수입량의 40%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제공받고 있다. 구 소련에 속해있던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90%에 육박한다. 이처럼 '에너지 밀월관계'가 이어지면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로부터 부수적 이익까지 챙기고 있다. 독일의 에너지 업체 루흐르가스는 서방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러시아 에너지 사업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으며,도이체방크는 유코스 매각 주간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독일의 이체(ICHE)는 최근 러시아의 고속철도 모델로 결정됐다. 이와 관련,국제에너지기구(IEA)는 특별 보고서를 통해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한 국가에 대해서만 에너지 의존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에너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러시아가 조만간 유럽 경제를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러시아 패권 확대 우려=유럽 국가들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푸틴 대통령의 독재화를 공개 비난하며 러시아의 패권 확장을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하루 석유 생산량(1천만배럴) 가운데 고작 12만9천배럴을 수입하고 있으며 천연가스는 아예 공급받지 않고 있다. 그만큼 에너지 의존도에서 자유롭다는 얘기다. 덕분에 미국의 정·관계나 학계 등 여론 주도층들은 러시아의 독재화에 대해 과감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국제정책센터의 셀리그 해리슨 선임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친러파와 친미파의 극단적 대립은 미·러 관계가 신(新)냉전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징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며 "에너지를 이용한 러시아의 패권 확대를 더 관심있게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WSJ는 "에너지라는 변수가 걸려있어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독재화에 대해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가까운 장래에 큰 화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