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앙방송(CCTV)에 '대화'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국내외 이슈가 되는 인물을 초청해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존 체임버스 시스코시스템스 회장,크레이그 배럿 인텔 CEO(최고경영자) 등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종종 초청되곤 한다. 지난 2일 밤 새해 첫 방송에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나왔다. 방청석에는 지난해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 유출 논란을 빚었던 UT스타컴의 우잉 회장도 보였다. 이날 사회자는 삼성 급부상의 비밀을 캐려고 노력했다. 중국 기업에 삼성은 드라마틱한 학습 모델로 보일 만했다. 윤 부회장은 "98년 7월 한 달간 적자가 1천7백억원으로 그대로 가면 회사가 망할 위기에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상화를 못시키면 사퇴할 각오로 경영진이 사표를 써놓고,5개월간 임직원의 30%를 잘라냈다"고 말할 때는 좌중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윤 부회장은 당장의 생존 대책을 시행하는 동시에 10년 뒤 무엇을 할 것인가에도 대비했다고 들려줬다. 윤 부회장은 "위기를 극복하는 것보다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삼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으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자는 "10년 전 삼성이 겪은 위기가 지금 중국 기업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며 삼성 배우기를 촉구했다. 방청석의 한 대학 교수는 나이키를 예로 들며 하청 생산기지에 머무르고 있는 중국 기업은 설계와 마케팅에서 부가가치를 대거 창출하는 삼성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날 방송은 삼성 학습을 통해 기존의 부가가치 사슬을 깨고 싶어하는 중국의 노력을 보여준다. 가전업체 하이신이 디지털TV에 집중하는 것은 삼성의 고급 브랜드 전략을 본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을 치켜세우는 방청석을 향해 윤 부회장은 "중국 기업의 발전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경쟁자로서 겁도 난다"고 했다. 얼마전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단과 간담회를 가진 윤 부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산업계에 후발주자가 선두주자를 따라잡는 게 없다면 삼성전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