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8일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이 2005년 삼성그룹 경영계획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선 국내 기업들에 다소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다. 삼성이 2005년 경상이익 목표를 지난해보다 23.2%나 줄여 잡은 것.지난해 기록적인 경영실적을 달성한 재계 1위 삼성이 수익 전망을 대폭 낮춘 것은 이례적인 일로 국내 기업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이같은 삼성의 예상을 깬 결정은 환율 하락,세계 정보기술(IT)시장의 경쟁 격화 등 악화되고 있는 경영환경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투자는 오히려 사상 최대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이는 모든 기업이 똑같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경쟁업체들과 달리 미래를 위한 투자에 집중,성장 잠재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어려울수록 투자 늘린다 올해 삼성은 연평균 10%가 넘는 신장세를 보여온 매출은 3%증가에 그친 1백39조5천억원,경상이익 목표는 23.2% 줄인 14조6천억원으로 확정했다. 하지만 주력사업의 시장지배력 확충과 브랜드 디자인 등의 소프트 경쟁력 향상을 위해 시설투자는 지난해에 비해 13.0% 늘어난 13조9천억원,연구개발(R&D)투자는 19.7% 증액한 7조3천억원으로 잡았다. '사상 최대 투자 결정'의 배경과 관련,이 본부장은 "환율 유가 IT경기 등 변수가 많아 향후 경기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어려울수록 투자를 늘려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일관된 방침에 따라 적극적인 투자계획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불황기에 오히려 투자를 늘려놔야 경기가 회복될 때 큰 폭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삼성 특유의 투자전략을 올해도 실천하겠다는 얘기다. ◆주력 제품 경쟁력 지킨다 삼성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반도체 LCD 휴대폰 등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주력 제품의 경쟁력을 유지할 계획이다. 지난해 총 19조원 규모의 세전이익을 벌어들여 어느 기업보다 풍부한 유동성과 투자여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위기'를 경쟁업체들과의 격차를 확실하게 벌릴 수 있는 기회로 만들겠다는게 삼성의 계산이다. 삼성은 더 이상 다른 기업들로부터 '한수' 배워가며 성장할 수 있는 후발주자가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헤쳐가야 하는 '개척자'의 위치에 올랐다. 이 때문에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제품들의 시장성과 수익성을 지키는 동시에 신기술과 신제품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는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기술을 빌려주거나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올해 신년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나 기쁨과 보람은 고난 속에서 꽃을 피우며 진정한 일류기업은 불황에 더 빛을 발한다"며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새로운 출발선에 선 지금 다시 한번 힘을 모아 힘차게 미래로 나아가자"고 임직원들의 분발을 독려했다. ◆수출로 불황 돌파한다 삼성은 플래시메모리 등 고부가가치 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호조를 보이며 지난해 5백27억달러의 수출 실적을 거뒀다. 삼성은 올해 수출목표를 지난해보다 12.3% 늘어난 5백92억달러로 잡았다. 문제는 '환율'이다. 환율 1천50원을 기준으로 수출목표를 설정했지만 삼성은 환율이 1백원 하락할 때마다 그룹 수익이 3조5천억원 가량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각에선 환율 1천원선이 깨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삼성은 해외시장에서 공격적 마케팅을 펼쳐 환율 부담을 극복하겠다는 목표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