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고스톱과 상생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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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선경 시인 >
나는 고스톱을 잘 치지 못한다.
국민 대중오락인 고스톱을 잘 못하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앉는 날이면 나는 번번이 이상한 별종으로 취급받곤 한다.
내가 고스톱을 못 친다는 것은 결코 흑사리 열과 흑사리 띠를 못 맞추거나 풍 열과 풍 띠의 짝을 못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정말 고스톱을 못한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스톱의 진수는 역시 고(go)와 스톱(Stop)에 있다.
고(go)할 때 고하고 스톱(Stop)할 때 스톱하는 것,이 시기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번번이 이 시기를 놓쳐 스톱해야 할 때 고해 바가지를 쓰고,고해야 할 찬스에 상대의 패를 못 읽고 그만 스톱해 좋은 찬스를 3점짜리로 만들곤 한다.
이러다보니 패를 풀어야 할 때와 상대방의 패를 말려야 할 때도 알지 못하고 내 생각만의 마구잡이식으로 쩍 쩍 패를 풀다보면 판이 순식간에 엉망이 된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헷갈려 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의 내 행동을 무슨 고수(高手)쯤으로 생각하다 몇 판이 지나면 금세 알아차리고는 아주 무시하기를 뭐 대하듯 한다.
이쯤 되면 이번에는 저희들이 잘못하고도 마치 내가 잘못한 양 말하고 나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등 아주 막대하기가 말도 못한다.
이렇게 되면 나는 더 판단력이 흐려져 고스톱 판을 흔들고 점점 더 오리무중으로 패를 풀어 고스톱 판을 아주 문란하게 만들어 질서를 어지럽힌다.
이것은 스포츠도 오락도 그 무엇도 아니어서 제발 너 좀 빠져라 사정들을 하게 되고 나는 나대로 괜히 미안하고 쑥스럽다가도 또 깊은 소외감을 느끼곤 한다.
좋은 기분으로 놀러갔다가 이놈의 고스톱 때문에 기분이 엉망이 된 일이 나에게는 부지기수다.
이렇게 국민 대중오락인 고스톱이 나로 인해 수모를 받게 되고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무슨 고스톱 혐오자나 비사회적인 인사로 취급되곤 한다.
그러나 고스톱에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타협과 절제가 있다. 어느 한 사람이 독주(獨走)하는 것을 막아 최소한의 점수만을 나게 하는데 이를 푼다고 한다.
또 결정적인 패를 가지고 두 사람 모두를 견제하는 법도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격변에 따라 고스톱의 방식도 여러 가지로 바뀌어왔다.
남이 설사를 한 것을 쌌다고 하는데 이놈을 가져올 때 피 한 장만을 가져오는 방식에서 한 장만 남기고 나머지 몽땅 가져오는 전고스톱,자신이 제일 필요로 하는 패를 가져오는 노고스톱,도로 한 장씩 내주는 최고스톱 등이 대표적이다.
아무튼 정치와 고스톱은 서로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바가 있는가 보다.
그러니 고스톱도 정치의 변천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규칙들이 만들어지지 않았겠는가.
고스톱을 보면 꼭 나만 이기려고 해서는 되지 않는다.
상대의 패를 읽을 줄도 알고 적당히 풀 줄도 알아야 제대로 된 판이 이루어진다.
타협과 견제와 절제의 조화가 있다.
어디 정치라고 다르겠는가.
내 의사만 관통돼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의사는 무시돼서야 어떻게 바른 판이 이뤄지겠는가.
모두가 상생(相生)이다.
서로를 살리고 서로 살려고 해야 한다.
나도 살고 남도 살리자.
이것이 정치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 내가 치는 이 고스톱 판보다 더 무질서하다.
금세 약속을 하고도 판을 뒤집거나 처음부터 판 규칙이 맞지 않았다고 우기거나 아무튼 개판이다.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패를 풀거나 먼저 풀어야 할 패를 나중에 풀고,나중 풀어야 할 패를 먼저 풀거나,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할 패를 미리 던져놓거나 꼭 고스톱 못하는 내가 판을 헝클어 놓은 것처럼 뒤죽박죽이다.
고스톱이든 정치든 타협과 절제는 필요하다.
새해에는 우리에게 고스톱 판만큼이라도 수긍이 되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새해의 작은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