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전문가들은 투명회계를 담보하기 위해선 ▲합리적인 회계제도 ▲투명한 회계처리를 하려는 경영인의 마인드 ▲회계감사인의 철저한 회계감사 등 3가지가 탄탄하게 맞물려가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기업 실정이나 거래관행에 맞지 않는 회계기준서가 제정돼 기업들이 회계기준서를 따르려면 거래관행 자체를 바꿔야 하거나, 회계감사인의 철저한 회계감사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경영인에게 투명회계 마인드를 갖도록 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IMF외환위기 과정에서 우리 나라는 IMF당국 등으로부터 우리 나라 회계기준을 국제기준으로 맞추라는 외압을 받았고, 이에 따라 국제적 정합성에 따른 회계기준서 제정작업이 민간기구인 한국회계연구원을 중심으로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국제회계기준으로 일치시킨 회계기준서 제정에 따라, 특수한 거래형태가 존재하는 백화점업이나 임대주택사업, 외항해운업 등은 "바뀐 회계기준서 때문에 영업활동을 못할 지경"이라며, "우리 고유특성을 살린 회계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조세일보는 클린회계캠페인의 일환으로 회계제도적 측면에서 어떤 '투명회계 저해요인'이 있는지, 백화점업과 임대주택사업, 외항해운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제적정합성을 위한 국제회계기준으로의 일치가 우리 산업특성과 어떤 마찰현상을 집중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이번엔 그 첫 순서로 백화점업계의 회계처리와 관한 분쟁을 소개한다. ■ 특정매입매출거래와 백화점 백화점안에서 이뤄지는 매출형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다. 백화점이 상품을 사서 백화점 상표를 부착해 판매하는 직매입거래가 있는가 하면, 백화점내 점포를 제조업체에 임대해서 판매하는 임대형 판매가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세 번째인 특정매입거래. 특정매입거래는 백화점이 제조업체로부터 물건을 사들여오면서 매입세금계산서까지 끊어주지만, 백화점에서 판매가 되지 않은 재고상품은 언제든지 제조업체에 반품으로 보낼 수 있는 거래형태다. 백화점업계에선 그 동안 특정매입매출거래에 대해 납품업체로부터 매입하는 시점에 총액으로 상품매입의 회계처리를 했다가, 소비자에게 판매할 때도 총액으로 매출의 회계처리를 해 왔다. 특정매입매출 거래에 대한 손익귀속을 백화점에 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2년 5월 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연구원은 기업회계기준서 제4호 '수익인식'에 의거 재고자산에 대한 위험이 백화점에 귀속되지 않고 납품업체가 계속 부담하기 때문에 위탁판매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입장을 결정했다. 판매되지 않은 상품은 제조업체인 납품업체에 반품이 되기 때문에 백화점은 거래의 주체가 아니라 수탁자의 역할만 하고 있으므로, 매출액과 매입액의 차이인 마진에 해당하는 금액만 매출로 보고하는 '순액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2003년 백화점업계에선 그동안 총액주의 회계처리로 인해 롯데쇼핑이 조2683억원의 매출로 신세계 6조8371억원보다 많아 부동의 업계 1위를 고수해 왔지만, 순액주의로 단순회계제도만 바뀌었음에도 롯데쇼핑은 매출 3조5418억원으로 매출 5조8038억원인 신세계에 밀려 2위를 기록하게 됐다. 이와 관련 백화점업계는 "특정매입매출을 총액으로 인식하든, 마진에 해당하는 순액으로 인식하든 당기순이익의 차이는 없다"며 "이러한 회계처리의 변경조치는 우리나라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백화점 및 협력업체의 거래행태를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궁극적으로 백화점업의 쇠퇴 혹은 소멸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계제도가 우리 고유특성에 맞는 거래관행조차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 ■ 총액주의와 순액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백화점업체의 주장대로 회계전문가들은 총액주의나 순액주의 중에 어떤 방식으로 회계처리를 하든 백화점의 당기순이익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매출외형에선 총액이냐 순액이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총액주의로 할 때 백화점은 상품의 매입과 매출을 모두 백화점 매입과 매출로 잡게 되지만, 순액으로 처리를 했을 땐 백화점이 남기는 마진만 수익으로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 이 때문에 업계의 자존심이 걸린 업계1위 자리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이같은 회계처리 외에도 세무처리와 관련된 문제도 크다. 회계와 세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 백화점의 특정매입과 관련된 제조납품업체들은 지금까지 백화점에 납품하면서 행한 매출기록으로 모든 회계처리를 완결지을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에 미판매 재고품이 돌아오면 매출을 취소하면 됐다. 그러나 순액주의로 회계처리를 하게 되면 백화점에서의 매출의 주체는 모두 백화점에서 납품업체로 바뀌어야 한다. 모든 납품업체는 백화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매출거래에 대해 납품업체 스스로 매출에 대한 회계처리를 해야 하고, 세금계산서도 납품업체 명의로 끊어줘야 하는 것. 이와 관련 회계법인 관계자들은 순액주의로 회계처리기준이 바뀜에 따라 회계감사가 훨씬 어렵게 됐다고 토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백화점에 남아있는 모든 재고를 백화점 재고로 봐 회계감사를 수행하면 됐지만, 특정매입상품에 대해선 수백개 업체를 모두 회계감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세무행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지금까지는 백화점이 끊어준 세금계산서의 잘잘못만 가리면 됐지만, 순액주의에 따라 수백에서 수천개에 달하는 납품업체가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고, 이에 따른 세무행정 비용도 만만치 않게 늘어나게 된 것. ■ 회계전문가들은 어떻게 보나 이만우·정규언·신현걸 교수 등은 "순액이든 총액이든 백화점 당기순이익에는 차이가 없는데, 백화점이 순액을 매출로 인식하면 백화점 마진은 매장 임대료와 같이 취급돼, 백화점이 소매업자가 아닌 부동산임대업자로 취급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 등은 또 "그 결과 백화점 매출은 국제간 비교를 할 때도 우리나라와 같은 특정매입매출 방식을 택하면서도 매출총액을 전액 계상하는 일본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순액주의 표시에 따라 업계 관행이 다른 미국이나 유럽의 백화점에 비해 국내 백화점은 영세사업자로 나타나게 되고, 우리 고유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인들은 백화점업계의 재무상태와 영업성과를 제대로 알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세무처리도 문제. 이 교수 등은 "백화점을 매장만 임대하는 것으로 본다면 수백-수천개의 납품업체마다 따로 영수증을 발행해야 하는 부작용도 뒤따른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 등은 "현행 관행으로 백화점은 수입금액이 전액 노출되는 가장 투명한 매출처이고, 총액인식은 부가가치세와 법인소득세를 전액 징수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며 "납품업체마다 별도로 영수증을 발행하게 되면 현금매출에 대한 수입금액 누락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 교수 등은 "백화점 특정매입매출 매장의 매출은 납품업체와 백화점간 반품조건에 대한 조정만 이뤄진다면 매출을 총액으로 표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백화점업계, 稅務用은 '총액주의'-會計用은 '순액주의' 특정매입매출거래에 대한 순액주의로의 변경은 백화점 업계의 회계처리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세법에선 총액주의가 인정되는 반면, 회계에서만 순액주의가 인정되기 때문. 이에 따라 백화점 업계에선 지난해말 세무용과 회계용 두가지 회계처리를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명한 회계처리를 위해 국제기준을 따라 간 것이 되레 투명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백화점 매출 중 신특정매입거래의 수익인식 질의회신'에서 새로운 유형의 특정매입매출 거래일지라도 입고후 90일 이후에는 반품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총액법을 적용하도록 한발 물러선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울러 L백화점을 시범적으로 선정, 반품기간별 상품을 분류한 뒤 총액주의와 순액주의를 구분해서 회계처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L백화점의 회계처리 실태와 납품업체와의 관계 등을 일정기간 살펴본 뒤 순액주의의 강화 내지 완화여부에 대한 추가결정을 하겠다는 취지. L백화점의 실제사례가 어떤 결과를 몰고 오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이동석 기자 dslee@jose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