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공단 오거리 인근 아울렛타운.마리오아울렛 등 패션의류 아울렛과 중소기업 공장들이 무리를 이룬 곳이다.


이면도로에 형성된 먹자골목 가운데 '돈씨네 돈천하'란 간판이 눈에 띈다.


이 가게 주인은 김종서 사장(52). 한때 폐인으로 세상을 영원히 등질뻔 했지만 지금은 돈 버는 재미로 아픈 세월을 잊고 산다.


2003년은 그에게 악몽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3월 김씨는 24년간 몸담아온 직장을 단 30분만에 마감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무기기 제조업체 Z사였다.


한ㆍ일 합작인 이 기업의 모토는 '평생직장'. 79년8월 입사한 김씨도 이 모토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20여년 세월이 어떻게 지나간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일했다.


김씨의 즐거운 직장생활은 IMF 사태 이후 조금씩 깨져갔다.


동료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가더니 급기야 1천5백명 임직원 중 2006년까지 절반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재작년 3월 초 평소 존경하던 A상무가 불렀다.


그는 "김 부장…." 한 마디 하고는 말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줄담배만 피워댔다.


안경 너머로 눈물이 비쳤다.


김씨는 한참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퇴직서류 주십시오,여기서 사인 하겠습니다. 그리고 퇴직날짜는 알아서 적어 주십시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언젠가 오리라고 예상했지만 30분은 너무 짧았다.


허탈했다.


앞으로 무얼 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별안간 두 어깨가 축 늘어져 무기력감이 엄습했다.


기약 없는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꽉 짜인 일과가 얼마나 소중한지 비로소 알게 됐다.


불행은 김씨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큰 형은 사업에 실패한 뒤 뇌출혈로 쓰러지고 동생은 간경변으로 죽음을 앞둔 형편이었다.


아흔을 앞둔 노모는 치매로 거동도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퇴직금 8천만원 중 4천만원을 이웃집에 빌려주었다가 고스란히 떼였다.


나머지는 주식투자로 날렸다.


5월부터는 아예 충남 금산의 산속 오두막에 자리잡고 세상과 담을 쌓았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자살 충동이 매일 밤 몰려 왔다.


"하루는 집에 잠깐 들러 옷 갈아 입고 나오다 보니 아들 방에 꽂힌 일기장이 눈에 띄더라고요.


슬쩍 들쳐 보았는데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띵'했습니다.


눈물도 핑 돌고요.


그걸 계기로 1백80도 변신했지요."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들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빠도 아마 직장을 잃고 바깥으로 돌아다니시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뉴스시간에 나오는 노숙자들 틈에 아빠가 안보인다는 거다.


어디서 뭘 하시는지 엄청 걱정된다.'


그 길로 산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11월 가족들에게 새 출발을 선언했다.


창업사이트,창업박람회,강의장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녔다.


두 달 동안 발품을 판 끝에 할 만한 아이템을 골랐다.


그러나 돈이 한 푼도 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장모와 죽마고우가 천사로 다가왔다.


장모는 힘들게 모은 5천만원을 사위 창업자금으로 선뜻 내놓았다.


고향인 충남 옥천에서 과수원을 하는 친구는 2천만원을 아무 조건없이 내줬다.


"벌어서 환갑 전에만 갚아라"는 당부와 함께.


"가맹 계약하던 날 본사 사장을 윽박질렀습니다.


장사 망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부모형제 다 죽는다고요.


본사 사장이 몇 번이고 장담했지만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30평짜리 점포를 권리금 4천만원,임대보증금 3천만원,월세 2백만원에 얻었다.


원래 추어탕 소머리국밥 등을 하던 음식점 자리였는데 장사가 안돼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뀐 곳이었다.


지난해 4월13일,점포를 오픈하고 한동안 점심 때면 자리를 비웠다.


불안해서 가게를 지키고 앉아있을 수 없었던 것.다행히 점심 저녁 때 손님은 꽉 찼다.


자신감이 들었다.


4월30일까지를 특별 판촉기간으로 정했다.


인근 공장과 아울렛 등에 화분과 떡을 돌리고 친지들을 최대한 불렀다.


덕분에 4월 말까지 김씨 가게는 빈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5월부터 한 달 매출이 꾸준히 4천만원을 오르내렸다.


비수기로 치는 8월에는 오히려 1천만원이 더 늘었다.


김씨는 목표를 세웠다.


올 4월까지 1억원을 적립,사업 확장 밑천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부인도 가게 일에 참여했다.


인건비와 월세,생활비를 빼고는 전액 적립금 통장에 들어간다.


"장사 시작한 뒤 6개월간 목욕탕 구경을 못했지요.


새벽 1시에 귀가해 잠깐 눈붙이고 오전 9시에 다시 가게에 나와야 하니까요.


그래도 꿈이 있어 좋습니다.


올 상반기에는 가게 하나 더 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자칫 폐인이 될 뻔한 재작년을 돌이켜보면 아찔하기만 합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