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 <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 올해 노사관계는 향후 10년의 노사관계 향방을 좌우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노·사·정을 비롯 대부분의 시민들도 지금과 같은 노사관계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 변화와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는 열망이 팽배해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지나친 조급증이다. 노동시장·노사관계의 선진화는 한두가지의 정책이나 이벤트로 성취될 수 없고 일련의 세밀한 변화가 축적된 결과로서만 가능하다. 성급한 의욕과 열망은 또 다른 실망과 불신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체 노사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 첫째 노사단체 리더십의 안정이다. 민주노총은 1월 대의원 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결정은 민주노총 리더십 안정뿐 아니라 전체 노사관계 질서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월 말로 예정된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도 향후 3년간 진로를 결정하는 변수다. 양 노총이 모두 지금의 리더십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로를 선택한다면 합리적인 변화의 물결이 보다 가시화될 것이다. 둘째 2005년 중의 입법과제를 둘러싼 갈등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당장 닥치게 될 문제가 2월 비정규직관련 법의 국회처리이다. 이 과정에서 불거질 노동계와의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중요한 변수이다. 전체 노사관계 파국을 불사하고 시급하게 추진할 필요도 없지만 마냥 미룰 수도 없다. 다른 뚜렷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사·정은 법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법 이외에 비정규 처우개선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정책패키지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이는 입법정책 중심의 갈등구조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노사관계 법·제도선진화방안(소위 '로드맵')의 처리도 중요한 정책 변수이다. 로드맵의 추진 여부와 추진방식은 정부가 향후 노사관계를 어떤 기조로 운용할 것이냐 하는 정책 선택에 달려 있다. 정부는 노사관계 지형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로드맵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노·사·정의 전략적 선택에 달린 문제이지 노사관계 선진화의 필수불가결한 정책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노·사·정의 리더들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재계의 적극적인 이니셔티브가 필요하다.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해고는 미덕이고 해고의 자유화가 노동시장 선진화의 척도라는 인식이 널리 유포돼 있다. 이러한 가치의 확산으로 모든 근로자들이 고용불안에 떨게 되고 노사관계를 더욱 경직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오히려 노사가 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임금의 경직성과 노사간의 비협조로 인한 기업 내 인력운용의 경직성이다. 연공에 의해 결정되는 임금,노사간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임금이 초래하는 경직성이 비정규직 양산의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고용불안으로 배치전환을 거부하고 다기능 훈련을 거부하는 행태가 더 큰 문제다. 따라서 임금안정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노사의 논의를 모아간다면 노사간 대립과 갈등도 완화될 수 있다. 그리고 교육·훈련과 고용안정서비스 등에서 노·사·정 파트너십을 추구해 간다면 노동시장·노사관계의 선진화가 앞당겨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재계 전체가 일반 근로자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노사관계 선진화 전략을 제시하고 노동계를 상대로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