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들이 경영을 제대로 간섭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개인 호주머니에서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어 형식적인 사외이사 역할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엔론의 사외이사 10명은 지난 2001년 12월 회계부정으로 파산,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한 주주들에게 개인 돈 1천3백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배상해 주기로 합의한 1억6천8백만달러 중 1억5천5백만달러는 임직원 배상책임보험으로 처리됐지만 나머지는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못한 데 대한 직접 책임을 지기로 한 것이다.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야 할 엔론의 사외이사는 전 선물거래위원장인 한국계 웬디 그램,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학장 로버트 재디크,벨코 오일 앤드 가스의 회장 겸 CEO 로버트 벨퍼 등 유명인사들로,개인적 부담이 가장 많은 이사의 배상금은 무려 5백만달러나 된다. 사외이사들의 사적 부담을 통한 소송 합의는 지난해 10월에 이뤄졌다가 비슷한 사례의 합의가 지난 6일 월드컴에서 이뤄진 후 공개됐다. 역시 회계부정으로 2002년 파산한 월드컴도 주주들과의 소송에서 5천4백만달러를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 가운데 1천8백만달러는 10명의 사외이사들이 개인 돈으로 부담키로 했다. 그동안 상장기업의 경영진이 아닌 사외이사가 주주들이 제기한 소송을 마무리하기 위한 합의금을 보험이 아닌 개인 재산으로 부담키로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월드컴과 엔론 사례가 이사회의 느슨한 감시에 대한 개인적 부담을 묻는 의미있는 조치라고 보도했다. 마나트 펠프스 앤드 필립스의 파트너 스티픈 라이언은 "이번 사례는 시스템에 없던 새로운 규율을 강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최근 2∼3년간 회계부정사건으로 생긴 혁명적 결과"라고 분석했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