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소득 서민층을 보호하기 위해 생계형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부모의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청소년, 영세 자영업자 등 세 부류를 대상으로 부채를 오랫동안 나눠 갚게 하거나 금융회사가 원리금 일부를 분담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금융채무가 가계(1백35조원)와 중소기업(1백80조원) 부문에서만 무려 3백15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극적인 채무조정방안이 절실하다고도 볼수 있다. 또 정부의 설명대로 이번 대책이 지금까지의 제도와는 달리 소득이 없는 사람들도 신용불량자의 멍에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중소기업 부도와 가계파탄이 줄을 이을 경우 자칫 대기업과 중소기업, 빈부간 격차 확대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해도 원금 탕감 등 예외적인 조항까지 만들면서 신용불량자를 구제해서는 곤란하다. 부채탕감은 돈을 빌려주고 갚는 신용을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근본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오히려 더 큰 부작용과 혼란을 가져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신용불량자 구제방침을 발표하자 신용불량자들이 금융회사에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등 벌써부터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정부는 3월쯤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구제대상과 방안이 경제원칙에 벗어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자영업자들이 많은 우리 풍토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세금을 낸 착실한 사업자들만 손해를 보는 일이 생겨선 안되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가 아닌 저소득층들이 정부의 구제를 기대하고 부채를 갚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잘못하면 신용불량에서 벗어나는 사람 수보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수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가 저소득층을 일시적으로 신용불량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해도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수는 없다. 이들에게 정상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점에서 기업투자활성화 등 일자리 창출 방안에 보다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