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봉규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bongkp@kotef.or.kr > 1400년대 중반의 어느날,동로마제국 황제에게 한 기술자가 찾아왔다. 자기가 발명한 신식 대포를 팔기 위해서였다. 그는 긴 창과 방패로 무장한 기사(騎士)의 시대는 가고 화약과 대포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역설하면서 자신이 개발한 대포를 살 것을 설득했다. 그러나 황제는 콘스탄티노플 성(城)의 견고함을 자랑하면서 그 제의를 거절했다. 대포공은 발길을 돌려 오스만터키제국으로 향했다. 오스만터키의 술탄 마호메드 2세는 대포의 유용성을 꿰뚫어 보고 재빨리 이 기술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중세의 상징이었던 콘스탄티노플 성은 대포를 앞세운 터키군에 의해 1453년 함락되고 말았다. 기술의 변화를 무시하거나 이를 깨닫지 못해 역사에서 도태된 경우는 그 외에도 수 없이 많다. 증기기관차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던 때 여러필의 말이 끄는 최신식 마차는 기관차와의 속도경쟁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말이 끄는 힘은 곧 한계에 다다르는 반면,증기기관차는 기술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KTX가 시속 3백50km를 돌파하게 됐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이 처음 발명됐을 때 지금과 같이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거미줄처럼 엮어 나가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 할 수 없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과 부를 만들어내는 요술 상자가 된 것이다. 세상의 변화 정도가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인간이 만든 제도나 사회구조도 기술 발전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역으로 기술의 진보가 세상을 바꾸고,새로운 기술의 탄생이 결국에는 문명의 흐름을 바꾸게 만드는 것도 진실이다. 기술이란 시발점에서는 전파의 속도나 파급효과가 미미하지만 일단 변곡점만 지나면 관련 지식이나 사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는 산업이나 사회의 패러다임도 변하기 시작해 혁명기에 이르면 새 기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제도가 형성되게 된다. 실로 작은 선택이 나중에는 대세를 판가름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통적 방식이 좀더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기술이나 방식을 무시하는 것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휴대폰 안테나의 용도가 귀 후비개 대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싸이질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도토리의 사용법도 익혀야 한다. 새 기술,새 문명의 이기(利器)를 활용하고 함께 개선해 나가는 적극성 없이는 낙오될 수밖에 없는 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