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주지 않는다/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이재무 작 '마흔') 시대가 바뀌면 모든 게 달라지거늘 한국인에겐 요지부동인 게 있다. 맹모삼천지교에 대한 굳센 믿음이 그것이다. '말은 제주,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던 옛말을 그대로 좇는가 하면 서울에서도 이른바 좋은 학군을 찾아 자기집 놔두고 전세살이를 한다. 오죽하면 학원이 집값을 결정한다는 어이없는 일이 실재할까.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고 자신의 삶 따위는 아랑곳없는 게 한국 부모다. 60∼70년대엔 수많은 시골 부모들이 생의 터전인 논밭을 팔아가며 서울로 유학간 자식 뒷바라지를 했거니와 오늘날엔 자식의 조기유학을 위해 부부가 생이별을 한다. 그것도 몸과 마음의 상처 모두 쉽게 아물지 않는 나이 마흔을 넘어. 기러기 아빠들의 생활은 힘겹다. 뻔한 수입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느라 형편이 빠듯하고 먹고 치우고 청소하는 일까지 혼자 해결해야 하는 데다 외로움을 견디기도 쉽지 않은 까닭이다.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내 자식과의 사이가 뜨악해진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버티다 못해 자살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기러기아빠가 줄어들지 않는 건 국내 교육에 대한 불만과 불안한 미래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내 자식만은 좀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 영어라도 잘 가르쳐 불확실한 세상을 헤쳐가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모든 희생,어쩌면 가족이 해체되고 말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감내하는 것이다. 연간 2만명의 기러기아빠가 생겨난다고 하는 가운데 미국 워싱턴포스트지가 '고통스러운 선택'이란 제목으로 한국의 기러기 아빠 실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는 소식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가족이 떨어져 살면서까지"라는 얘기도 많지만 "오죽하면"이라는 당사자들의 대답엔 할 말이 없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희생이라지만 도박이기도 하다'라는 외국신문의 지적엔 가슴이 미어진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