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사업관계 이어온 현대重 첫 고객 리바노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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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나무 몇 그루만 덩그러니 서 있던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과 영국 스코트리스고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 도면만을 달랑 들고 첫 발주를 부탁했을 때 정말이지 황당했습니다. 그런 현대중공업이 세계 1위 조선업체로 성장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12일 오전 현대중공업 14안벽에서 7만3천t급 유조선에 대한 명명식을 가진 그리스의 선 엔터프라이즈사 조지 리바노스 회장은 정 명예회장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술회했다.
울산 조선소를 짓기도 전에 첫 수주에 나선 정 명예회장이 세계 곳곳의 선주사를 찾아 동분서주하던 1971년 무렵이다. 리바노스 회장의 아련한 기억 저편에 정 명예회장과의 당혹스런 대면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는 듯했다.
"정 명예회장은 실로 경이로운 인물이었지요. 도대체 어떻게 그런 기발한 발상이 가능했는지,또 시도할 수 있었는지 대단한 배짱의 소유자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정신력과 모험심에 반해 두손을 들고 말았지요. 결국 현대에 유조선을 발주하게 됐으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의 인연은 아니,현대중공업과 고객사와의 인연은 한세대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33년 전 현대중공업이 배를 건조한 경험이 전무했을 때 현대중공업에 최초로 26만t급 유조선을 발주한 리바노스 회장은 이날도 1남4녀의 자녀를 데려와 정 명예회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가 지금까지 현대에 발주한 선박은 이번을 포함,모두 9척에 이른다.
리바노스 회장은 "현대중공업은 현재 '환상적인' 배를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이러한 저력은 바로 한국에 조선소를 만들어 보겠다는 정 회장의 꺾일 줄 모르는 투지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리바노스 회장은 정 명예회장과의 우정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좋은 친구'(good friend)'라고 말한다. 그만큼 둘 사이의 정은 두터웠다. 정 명예회장이 타계 전인 99년에도 경주에서 서로 만나 우정을 나눴다.
정 명예회장은 "예전의 믿음에 지금껏 감사의 마음을 잊을 수 없다"고 치사했고,리바노스 회장은 "세계 최고의 조선업체로 성장한 모습을 보니 한없이 기쁘다"며 현대중공업의 발전을 축하했다.
리바노스 회장은 특히 정 명예회장이 타계했다는 비보를 접하자 바로 추모의 글을 직접 써서 현대중공업에 애도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의 우정은 대를 잇고 있다.
정 명예회장의 6남이자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도 이날 명명식에 초청돼 선대와의 각별한 우정을 확인했다.
정 의원은 "선친이 조선소를 건립할 당시 세계는 불신했지만 리바노스 회장이 지금의 현대중공업 신화를 가능하게 해주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