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생각하면 가난을 멍에처럼 지고 살았던 시절의 슬픔이 진하게 배어 난다. 사방이 찌그러진 양은 도시락에는 꽁보리밥이 빼곡히 채워지고 반찬이라야 단무지 몇 점과 김치가 고작이었다. 뚜껑이 헐거운 탓에 김칫국물이 새어 나와 책과 가방을 적시기 일쑤였고 그 역겨운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마저도 형편이 못된 아이는 빈 도시락을 들고 다녔고 점심시간이면 친구들 눈을 피해 교실을 빠져 나와 운동장 한 구석을 서성이곤 했다. 이런 사정은 담임선생님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선생님은 입맛이 없다며 자신의 도시락 반을 덜어 제자와 나눠 먹는가 하면,도시락 두 개를 가져와 누가 볼세라 살며시 건네곤 했다. 이렇듯 끼니조차 때우기 어려웠던 시절은 검정 고무신,몽당연필,콩나물 교실 등과 교차되면서 낡은 공책 한 구석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도시락이 도마위에 올라 전국이 떠들썩하다. 서귀포와 군산 등지에서 결식아동들에게 제공된 도시락이 부실하기 그지 없어서다. 심지어 반찬으로 건빵이 지급됐다는 보도를 접하고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배고픈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문을 남기겠다고 하는 업자들이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공무원들을 두고 막말이 오가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장차 이 나라를 짊어질 동량재에 대한 대접이 이 정도니 다른 분야의 복지는 뻔하지 않겠느냐는 반문 역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당신 자녀에게 먹여 보시오"하는 네티즌들의 항의는 속이 후련하기까지 하다. 지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수준이 높아졌지만,전국적으로 결식아동 숫자가 1백여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25만명 정도가 점심혜택을 받고 있을 뿐 나머지는 엉터리 도시락조차도 맛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어른들의 무관심속에 아이들의 마음만 멍들어갈 뿐이다. 불우한 환경속에서 의기소침해 있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은 경제발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석달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학교급식법개정안'만이라도 시급히 통과시켜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