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교수ㆍ공법학 > 한국 헌법에는 9개 조항으로 된 '경제헌법'이 있다. 그런데 경제헌법은 야누스의 얼굴이다. 먼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경제질서의 기본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동시에 강력한 국가간섭주의를 천명한다.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경제민주화 등을 위해 국가가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야누스 얼굴 때문에 사회적 시장경제니 혼합경제니 하는 논란이 생긴다. 아무튼 경제질서의 핵심이 경쟁체제라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헌법교과서의 설명이다. 자유방임에 따른 '자본주의의 모순' 때문에 국가의 통제와 간섭이 필요하다는 권위서의 서술을 현존하는 법조인 대부분이 금과옥조로 익히고 암기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도대체 뭐냐며 아연실색하지만 진보주의 학자들도 국가가 과연 그 모순을 고칠 수 있느냐며 고개를 내젓기는 마찬가지다. 경제헌법이 혼란을 더 악화시킨다. 마냥 그렇게 배우고 외기만 했기에 경제의 정체성 혼란이 고질화된 것은 아닐까. 며칠전 신년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성장과 분배 어느 한 쪽이라도 소홀히 할 수 있느냐며 짜증내듯 반문했다. 분배지상주의 좌파이론의 혐의를 뒤집어씌우던 보수언론에 대한 묵은 반감일 수도 있겠고 경제살리기를 강조하고 보니 분배는 뒷전이 아니냐는 비난을 염두에 둔 반사적 동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으로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프로정치인다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사회가 '경쟁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긴 사람만 모든 것을 차지하는 사회'로만 가서는 안된다며 분배와 복지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최근에는 대학도 산업이고 경쟁이라고 강조하던 터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절박한 목표는 경기회복과 성장이며 잘 벌어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떳떳이 밝히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이유야 여러가지겠지만 한국 경제가 유독 성장이 둔화되고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려 왔다는 것 자체는 엄연한 사실이다. 중소기업의 참혹한 사정이나 전국적인 일자리 위기,소득 양극화현상은 이제는 누구나 시인하는 현실이다. 교육부총리 인사파동 때문에 망조가 들었지만 대통령의 올 연두회견은 모처럼 대다수의 동시대인들과 소통이 이뤄진 실용정치의 진면목을 보인 좋은 출발이었다. 대통령이 시장경제와 국가경쟁력을 외친다 해서 수상한 경제헌법이 걸림돌이 될 리는 없다. 살벌한 세상이다. 지척에서,심지어 지진해일 구호현장에서조차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잘 나가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빅리그'를 가졌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안에 빅리그가 있어 항시 경쟁력을 단련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불공정경쟁이나 과당경쟁의 방지도 중요하지만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래 경쟁의 가치를 절하하는 분위기에 젖어 있던 것은 아닐까. 과학기술 연구개발,산업과 무역,지역발전,문화관광 등 어디에도 경쟁이 없는 곳이 없다. 교육은 어떤가. 경쟁만큼 잘듣는 성취의 비타민이 또 있는가. 만인이 존중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시장론도 실은 독실한 경쟁의 철학이다.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을 부축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는 힘을 기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정부의 임무는 단지 개혁을 표방하며 불공정경쟁이나 과당경쟁을 방지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빅리그를 많이 만들어 경쟁시키고 기업과 경제의 체질을 강화해 밖에서도 세계 유수의 빅리그에서도 통하는 경쟁의 힘을 키우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새해에는 여야가 경제살리기에 동참하고 기업이 먼저 투자확대와 근로복지 향상을 약속,실천하며 오히려 노조가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살리겠다며 함께 뛰는 모습을 볼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