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7:24
수정2006.04.02 17:27
이현훈 < 강원대 교수ㆍ국제경제학 >
미국 달러가 예전같지 않다.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달러화의 가치는 여타 주요 통화에 비해 7% 정도 하락했다.
사실 달러화 가치는 지난 3년 동안 유로화에 비해서는 35%,엔화에 대해서는 25% 정도 하락했다.
세계의 기축통화라고 할 수 있는 달러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것은 미국의 지나친 재정적자 및 웬만한 나라라면 오래 전에 부도가 났을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GDP대비 6%에 육박하고 있는데 달러화 가치가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2006년에는 7%,2008년에는 8%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외채 증가의 형태로 유지돼 왔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미 채권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가져오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믿는 세계의 투자자들이 이를 계속해서 사들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출증대를 경제성장의 주요 수단으로 간주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중앙은행들이 자국의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미국의 채권을 계속해서 사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러시아,인도네시아의 중앙은행은 달러가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고 중국 등도 이미 미국 국채의 구매비중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달러가치가 향후 1∼2년사이에 세계 주요 통화대비 30% 정도 더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2.3조달러에 달하는 달러 자산의 일부만 매각하더라도 달러가치의 하락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달러가치가 추가 하락하면 현재 11조달러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투자자들의 달러 표시자산의 실질 가치가 하락하게 돼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여기에는 물론 가뜩이나 경제사정이 어려운 한국도 포함된다.
2004년 12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1천9백90억7천만달러.외환보유액의 적정규모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규모보다는 운용의 적정성 여부가 더 중요한 문제다.
현재 전세계의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65% 정도인데 한국도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게 되면 달러로 환산한 외환보유액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한달간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64.6억달러 증가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환율하락을 저지하기 위해 사들인 달러와 함께 유로화 등 여타 통화 표시자산의 달러화 환산액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유로화나 엔화로 환산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원화에 비해서도 달러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원화로 환산한 외환 보유 규모도 감소하게 된다.
결국 우리나라는 달러가치의 하락과 함께 엄청난 국부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연구기관이나 언론은 달러가치의 하락에 따른 민간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하락과 환차손 걱정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달러표시 자산의 잠재적 '환차손'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원화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달러 표시자산을 줄일 수 없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러 표시자산을 매각해서 원화가 아닌 여타 통화 표시자산으로 전환하면 원화가치의 급격한 상승없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달러화 표시자산을 외환보유액 중 50% 미만으로 줄이고 대신 유로화나 엔화 표시 자산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달러화 약세는 세계적인 추세다.
추세를 막으려 하다 위기를 키우기보다는 추세에 순응해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현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hhlee@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