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올인을 약속하는 대통령의 장황한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경제를 화두로 뛰고 있으니 잘 될 것이라고 믿는 것도 순박한 발상이다. 여전히 '성장과 분배의 동행'을 주장하고 남미는 포퓰리즘이 아니며 국보법과 경제살리기가 함께 갈 수 있다고 단언한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경제에 올인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한 예산 조기집행이나 아랫돌 위에 괴는 정부 기금 투입 등으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믿기에 더욱 그렇다. "성장과 분배는 함께 가야 한다"는 말씀부터가 실로 모호하다. 분배가 악화되고 사회가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 '분배정책의 부재' 때문이라고 본다면 지난 2년여 혹은 김대중 정부 후반기부터의 각종 분배정책들은 허공에 날려댄 공염불에 불과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대통령과 주변인사들은 분배 악화가 정책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이 둔화된 '결과'라는 사실을 언제쯤 인정할 것인가. 한 사람의 빈곤층을 구제할 때 두 사람,세 사람이 새로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 정부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신년기자회견이 있던 바로 그날 "분배를 도외시하는 것은 식견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며 반대파를 공격해댔지만 원인·결과를 혼동하는 것 외에 또 어떤 식견부족을 탓해야 할 일이 있는지 적당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성장은 과정이며 분배는 결과라는 것을 우리 당국자들,특히 국가를 '설계'한다고 자임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딱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참여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분배정책을 채 펴보기도 전에 이미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또 그 가처분 소득의 애로가 각종 연금 보험과 세금,다시 말해 참여정부가 강화하려고 하는 바로 그런 복지성 공공부문의 팽창 때문이라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나아가 바로 그것이 소위 내수불황의 뿌리라는 것을 여전히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한 지식 서비스 산업과 레저산업의 육성 또한 이 정부가 진심으로 그것을 해내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과격 노조를 누르고 전교조를 극복하며 환경론자를 넘어서고 지역 님비를 통제하지 않고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순진한 발상이다. 불행히도 그들 그룹 중 상당수는 참여정부의 정치 동맹군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설사 동맹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참여'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한,다시 말해 경제문제 해법에서 정치적 세력관계를 고려하고 있는 한 지식서비스 육성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라는 그럴싸한 말이 '투쟁하면 더 주는'식으로 퇴행·속화한 상황이라면 사회적 합의를 추구할수록 국가의사결정은 더욱 낮은 수준으로 스스로를 끌어내리게 된다. 바로 이 질문들에 대한 통렬한 인식전환을 읽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신년기자회견의 90%를 경제에 할애했던 대통령이었지만 진심어린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국가를 기획하려는 사람들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지금 대통령 주변에는 그런 기획가들이 무슨 무슨 개혁 등의 이름을 달고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슬로건만 넘쳐나면서 경제는 혼미해질밖에…. 정규재 편집국 부국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