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지 말고,내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인용함으로써 유명해진 이 말에 대해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가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지 말라"는 것은 국가란 전지전능한 존재라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는 착각에 바탕을 둔 것이기에, 또 "내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은 국민을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할 시녀의 위치로 격하시켰다는 점에서 각각 옳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케네디가 정부의 한계를 말하고자 했다면 솔직하지 않은가. 요즘 우리나라 대통령이나 정부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모든 걸 해줄 수 있다는 듯하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으니''정부가 대책을 세우고 있으니' 등등 다 그런 식이다. 이른바 경제의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전통산업과 첨단산업,정규직과 비정규직,부유층과 서민층,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정부는 정말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가. 양극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둘로 나뉘는 것 같다. 한쪽에서는 양극화가 경제회복을 더디게 하고 있으므로 이를 치유하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대통령이나 정부는 이쪽인 것 같다. 그러나 또다른 쪽에선 양극화는 경기침체로 인해 심화된 것이므로 이를 원인으로 보고 치유하겠다는 것은 잘못이고 경기를 살리거나 성장을 하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말한다. 양극화는 과연 경기침체의 원인인가,결과인가. 관점이 다르면 정책도 달라진다. 양극화를 경기침체 원인으로 보면 전통산업 중소기업 비정규직 서민층 지방에 대한 배려 내지 분배에,반면 결과로 본다면 경기회복에 중점을 두는 정책이 각각 강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 걸까. 경제 양극화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불가피한 측면이다. 개방이 진행될수록,기술혁신이 가속화할수록,또 경제가 성숙단계로 진입할수록 양극화는 불가피하다. 다음으로 구조적 측면이 있다. 산업연관관계가 약하거나 중소기업 성장기반이 취약하다든지 고용구조가 좋지 않거나 소득재분배 기능이 미흡한 것 등이다. 셋째는 내수부진 등 경기적 원인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양극화를 경기침체 원인으로 보는 쪽은 주로 구조적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조적 측면은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는 없지만 이로 인해 경제·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면 경기회복 또한 지연될 수 있다는 시각은 틀렸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측면을 회피하려는 것은 문제다. 양극화를 경기침체의 결과로 보는 쪽은 물론 그 반대다. 이렇게 양극화는 어느 한면만을 보고 단정지을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 처방 또한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투자와 소비 활성화에 주력해 경기를 살려야 하고,중장기적으로는 산업연관관계 강화 등 구조적 측면의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말하면 훌륭하다. 그러나 1백점을 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더라도 양극화가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렵다. 앞서 말했듯 불가피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개방을 할수록,기술혁신을 할수록,또 경제가 성숙할수록 그렇다. 그렇다고 양극화를 아예 없애고자 개방과 기술혁신을 포기하고 경제를 옛날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그것은 정부의 힘만으로는 안된다. 정부는 그런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