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사법연수원 수료생 3명 중 1명이 아직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사상 최악의 취업률을 보이고 있다. 경기 침체 속에 사법고시 합격자 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18일 사법연수원(원장 이근웅)에 따르면 이날 연수원을 수료한 34기 연수생 9백57명 가운데 33.4%인 3백20명의 진로가 미확정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수료생 9백66명 중 2백13명(22%)이 일자리를 잡지 못해 역대 최고 미취업률을 기록한 지난해보다 10%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2003년의 경우는 21%였다. 이런 사정 탓인지 이날 오후 2시 경기도 일산 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수료식에는 7백여명의 수료생만 참석했다.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수료생들 중 상당수가 식장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에 대해 사법연수원 관계자는 "연수원을 졸업한 법조인들의 구인 수요가 한정돼 있는 데 반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수료생이 많아 앞으로도 취업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경기 침체로 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는 경우가 줄어드는 대신 기업체나 공공기관에 취업하려는 연수원생은 늘어나는 추세다. ○복수지원 확산=연수생들의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반 구직자들과 마찬가지로 기업체나 공공기관에 복수로 지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계약직 형태의 취업 경쟁률도 해마다 치솟고 있다. 지난 11일 마감한 삼보컴퓨터의 변호사 채용 원서접수 결과 87 대 1의 경쟁률이 나왔다. 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직급과 연봉을 아예 표시하지 않았는 데도 변호사들이 대거 몰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살릴 수 있어 사업연수원 수료생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은 공공기관 취업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다. 감사원에 지원한 연수원 수료생의 경쟁률이 15 대 1인 것을 비롯해 외교통상부 15 대 1,경찰청 8.7 대 1을 기록하는 등 매년 공공기관 취업 경쟁률 기록이 깨지고 있다. 한 정부 부처 인사담당 관계자는 "외무,행정고시 출신과 형평성을 고려해 사법연수원 수료생에게 5급 대우를 책정했지만 지원자가 많아지면서 직급대우를 더 낮춰도 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털어놨다. ○연봉격차 3배로=높은 취업 경쟁률은 결국 연봉 격차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외국어와 전문영역,연수원 성적,학벌 등 4박자를 갖춘 이른바 연수원 톱랭킹 멤버들이 대형 로펌으로 직행할 경우 1억원 안팎(세후)의 초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성적이 신통찮은 이른바 '막변(연수원을 갖 졸업한 변호사)'들은 3천만∼4천만원대의 연봉에도 지원자가 대거 몰리는 추세다. 같은 연수원 수료생이라도 연봉 격차가 3배까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기업체에 입사할 경우 3∼4년 전만 해도 과장급 대우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대리,심지어 평사원 수준으로 직급 하향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수원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취업만을 위해 몸값 파괴 행위를 하는 것은 동료들의 몸값까지 끌어내리는 자해행위"라는 글이 뜨기도 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