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여의도의 명퇴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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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한 증권사 영업지점장인 L씨(43).
지난 월요일 본사에서 전달된 '희망퇴직' 공고문을 접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있다.
퇴직 대상으로 명시된 5가지 항목중 2개 항목에 해당돼 스스로 퇴직을 결심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사실상 강제퇴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번에 퇴직할 경우 위로금과 퇴직금으로 받는 돈은 1억9천만원정도.다른 증권사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이 정도 돈으로 뭘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새해들어 증시가 활황세를 타고 있지만 정작 여의도 증권맨들의 표정은 어느때보다 어둡기만 하다.
때아닌 '명퇴한파'가 몰아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증권사나 중소형 증권사나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연초 코스닥에 불이 붙으면서 거래대금이 늘어 증권업계는 모처럼 신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며 "이럴수록 소외감만 커지는 게 증권맨들의 심정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증권가에선 이미 지난해말부터 '명퇴' 바람이 불면서 6개 증권사가 전체 인력의 10%이상을 내보냈다.
명퇴라고 해서 고위직급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증권사는 입사 3∼5년차 직원도 상당수 퇴직시켰다.
이번에 명퇴당한 3년차 직원 S씨는 "명퇴금 1천만원으로 재취업을 준비할 생각이지만 막막하다"고 말했다.
증권가 명퇴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수합병(M&A)을 앞둔 3∼4개 증권사도 조만간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에 나설 예정이다.
여기다 실적이 악화된 소형 증권사들도 추가로 감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증권사가 일제히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증권사들의 대규모 명퇴는 증권사간 인수합병 탓도 있지만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증권사들의 무전략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수익성이 악화되는 근본요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구조조정만이 능사라는 시각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정종태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