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서울도심 유리건물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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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基俊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근년에 도심에는 멋진 건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도심뿐 아니라 부도심, 신계획 도시도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리고 최신 건물이 과거의 건물과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은 대형 유리를 많이 쓴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유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거리가 훨씬 밝아져 보입니다.
이처럼 대형 유리를 많이 쓰고 경우에 따라서는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 가까이에서는 그 건물의 내부를 시원스럽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서 또는 그보다 좀 더 멀리 떨어져서도 그 유리에 비친 주변의 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대형 유리 또는 벽면 전체 유리에 비치는 주변경관이 하나같이 뒤틀리고 어긋나있다는 것입니다.
경관이 뒤틀려 보이는 것은 유리 자체의 문제이고, 어긋나 보이는 것은 시공상의 문제입니다.
나는 유심히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오고 있는데, 어긋나 보이는 문제는 최근에 올수록 많이 시정되고 있습니다.
시공자 또는 감리자들이 정밀시공에 점차 눈을 뜨는 증좌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뒤틀림의 문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 수많은 멋쟁이 건물들 가운데서 경관의 뒤틀림이 없는 건물을 나는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국내에서는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주변경관을 뒤틀리지 않게, 어긋나지 않게, 주변 경관을 아름답게 반사해주는 유리건물이 실제로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는요.
한 달 전쯤인 지난해 12월에 일본 마쓰야마라는 작은 도시의 도심에 있는 대형 유리건물 앞을 지나면서 그 유리에 비친 경관을 보니 그 건물 앞 녹지의 경관을 그림같이 아름답게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대형건물의 앞면 전체가 한 장의 아름다운 풍경사진인 것입니다.
현재 서울 도심에는 일본 도쿄나 미국의 뉴욕에 못지 않은 훌륭한 최신 대형건물의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쿄 또는 뉴욕의 그런 거리를 지날 때는 어쩐지 서울보다 좀 품위가 있고 또 질서가 잡힌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그 비밀중 가장 중요한 것이 건물 유리에 비친 풍경임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도쿄나 미국은 뒤틀림이나 어긋남이 없이 도시 풍경을 반사해주는 유리건물을 가지고 있고, 서울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서울의 대형건물의 유리는 사람의 눈을 모두 난시로 만들어버립니다.
쳐다보면 어지럽습니다.
어지러우니까 쳐다보지 않고, 따라서 좋은 평면유리였다면 우리가 모두 누릴 수 있을 즐거움을 인식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나는 제안합니다.
우리도 평면유리가 주는 즐거움의 특권을 누려보자고 말입니다.
반사되는 아름다운 풍경은 순전히 평면유리의 조화입니다.
유리에 비친 풍경이 뒤틀려 보이는 것은 유리가 평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건물의 뒤틀린 풍경이 국산유리 때문이라면 우리나라 유리산업이 일본의 유리산업에 비해서 평면도가 낮은 유리만을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기술은 있는데 수요가 없어서 '안'만들고 있다면, 발주자의 의식수준이 일본을 못 따라가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래야 되겠습니까?
나는 제안합니다.
누군가가 우선 선도해 주기를.국산 유리 제조에 기술의 문제가 있으면 높은 평면도의 유리를 수입해서라도, 어느 선도적 기업가가 뒤틀리지 않고 어긋나지 않는 유리건물을 지어보여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유리 값이 좀 더 들겠지요.
시공이 좀 어렵겠지요.
그러나 기업가적 이해타산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런 멋진 건물로 인한 광고효과는 추가비용을 보상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 제안에 관한 의견을 이리 보내주십시오.
kjjeong@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