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양편에 싸움이 붙었을 적에 팔짱 끼고 구경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이 잠언을 늘 의미심장하게 되새겨 보곤 한다. 여러 함축적인 뜻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싸움이 끝난 뒤의 승자쪽으로부터 배척당하기 십상이고,패자는 오히려 한술 더 떠 깊은 원망감의 눈초리를 보내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두 가지의 대응 방법이 남을 듯 싶다. 처음부터 확실한 노선(路線)을 표명,어느 한쪽에 가담해 승리의 확률을 기대하는 게 그 하나고,다른 하나는 적극적으로 싸움을 말려 평화를 유지케 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아마도 마지막의 것이 이상적 선택일 듯 싶다. 이게 곧 시쳇말로 중도(中道)노선 또는 중도주의 쯤으로 번역될 수 있음직하다. 요즘 부쩍 정계(政界)에서 '중도론'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듯 들린다. 그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이 어느 새 3년째에 접어 들었는데 여야(與野)의 칼날 같은 대치가 계속돼 왔지만 뭣하나 이뤄진 것이 없지 않은가. 일컬어 경제의 추락과 민생의 피폐밖에 남은 게 없다고 해도 그다지 망발이 될 것 같지 않다. 오죽하면 여당의 전 의장이 '과격 상업주의'란 신조어(新造語)까지 만들어 가며 여·야 양측의 강경파들을 질타하고 자리를 사퇴해 버렸을지,그 심경이 애처롭게 마음에 와 닿는다. 정치는 이제 '중도론'의 부상과 함께 조금씩 나아져 갈 것으로 기대해 마지 않는다. 경제분야가 문제거리다. 이쪽의 '강경파' 기세는 아직도 드높기만 하다. 물론 개혁의 기치를 지금 내려버릴순 없다. 그동안 너무 귀 따갑게 들려오던 '성장'의 진군나팔 소리에 갇혀 숨도 내쉬지 못하던 '분배'를 챙기고,대기업들의 독과점 행태도 좀 완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개혁의 범위나 속도가 지금 너무 어지러울 만큼 높고 빨라,가뜩이나 심각한 불황의 그림자가 더 깊은 늪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게 아니라고만 우길 수 없는 형편이 됐다. 드디어 경제에도 '중도론'의 잣대가 긴요해졌다고 강조해두고 싶다. 개혁을 포기하란 것이 아니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도 기업에 '애정'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명분이야 어떻든 대기업들에 얼기설기 매어 놓은 밧줄들을 끊을 건 끊고,꽉 조여진 건 느슨하게 해줘야 할 것이다. 출자총액제한과 금융계열사 의결권 축소,또 증권집단소송제와 계열기업 계좌추적권 등을 중도론적 시각에서 손질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