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자오쯔양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85)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7일 베이징의 민주화 운동 동지들의 집 앞에는 경찰 병력이 갑작스럽게 불어났다. 톈안먼 광장은 출입이 철저히 통제됐으며,공안들의 경비 태세는 한층 더 강화됐다. 지난 1989년 6월4일 톈안먼 시위를 주도했던 민주화 운동가들은 중국 지도부의 이러한 움직임을 미리 예견했었다. 자오쯔양의 건강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중국의 현 정치 지도자들은 일주일 이상 밤잠을 설쳤을 게 분명하다. 톈안먼 시위는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애도하는 추모 인파들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며,중국 지도부는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현재 중국은 무수히 많은 사회 불안 요소들을 안고 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민주화 동지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정치·경제적 불안은 극도로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탄광 매몰로 사망한 근로자 가족들은 지방정부의 사건 은폐 조작에 항의해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농민들은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시달리다 못해 베이징으로 상경 시위를 떠나고,중국 전역의 이슬람 교도들은 한족만을 우대하는 차별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오쯔양의 사망으로 이러한 불안 요소들은 한꺼번에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으며,후진타오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저지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최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 후진타오는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사회 불안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상당수의 정치 비평가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정부로부터 철저한 통제를 받고 있는 중국의 언론들은 자오쯔양과 관련한 보도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으며,그의 역사적 업적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젊은이들,특히 대학생들조차 자오쯔양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많은 중국인들은 자오쯔양의 사망을 계기로 원자바오 총리의 행보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오쯔양의 심복 부하였던 원자바오는 톈안먼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89년 5월19일 톈안먼 광장으로 찾아와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하던 장본인이었다. 유교 사회의 전통을 따른다면 원자바오는 자신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던 자오쯔양의 복권 문제를 공산당 지도부에 적극 요청해야 함이 마땅하다. 실제로 상당수의 중국인들은 원자바오가 이러한 노력을 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나는 원자바오와 관련,비관적인 입장이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권력 투쟁에서 살아남은 원자바오가 중국 공산당의 신념과 달리 자오쯔양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기란 매우 어렵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원자바오 본인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마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오쯔양의 사망이 중국 내 경제 개혁뿐만 아니라 정치 개혁의 시동을 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점이다. 자오쯔양의 사망은 톈안먼 시위같은 대규모 민중 저항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지라도 새로운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정치개혁 없이는 경제 발전도 지속되기 어렵다는 단순한 사실을 중국의 지도자들은 하루빨리 깨닫기 바란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 ◇이 글은 톈안먼 학생시위를 주도했다가 미국에서 망명 중인 왕단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A Tragic Figure Spurned by His Party'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