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을 국내 최고의 화학회사로 키웠으니 여한이 없어."


한국 화학산업의 대부 성재갑 LG석유화학 회장(67)이 42년 동안의 기업 활동을 마치고 20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성 회장은 이날 퇴임의 변을 묻는 기자에게 "1963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 입사할 당시의 꿈은 내 손으로 국내 최고의 화학기업을 일궈보겠다는 것이었다"며 "이제 꿈을 이루고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게 됐으니 더 없는 행복"이라고 활짝 웃었다.


부산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락희화학공업사 공채 1기로 입사한 성 회장은 40년 넘게 한 우물을 판 화학업계의 산 증인이다.


그는 럭키석유화학 사장,LG화학 대표,LGCI 대표,LG석유화학 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 화학산업의 발전을 주도해온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으로 손꼽힌다.


특히 성 회장은 '화학강국이 미래강국'이라는 신념으로 70년대에는 소비재 가공에 치중하던 국내 화학산업을 석유화학 원료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냈다.


80년대는 생명과학을,90년대에는 전자정보사업으로 영역을 넓혀 가며 화학산업이 나아가야 할 성장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화학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가 미국 암스트롱사에서 바닥재 제조기술을 들여오려다 거절당하자 지난 80년 건물용 바닥장식재 '럭스트롱'을 독자 개발해 적자 사업부를 흑자로 탈바꿈시킨 일화는 LG 안에서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89년 신설된 럭키석유화학(현 LG석유화학) 사장을 맡아 당시 바다와 개펄이었던 지금의 여수 용성단지에 당초 예정 기간의 절반인 1년6개월 만에 공장을 완공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성 회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지난 96년 이른바 '베이징 선언'으로 꼽았다.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9월 독일 석유화학 회사인 휼스사의 구조조정 현장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베이징에 머물며 서울로 전화를 걸어 전 사업부문에 대한 혹독한 구조조정을 지시한 때다.


"서울에 들어오면 마음이 바뀔까봐 귀국 하루 전 결단을 내렸지요.


임직원 모두 입사 후 처음 겪는 일이라 저항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성 회장의 이 같은 결단은 2년반 동안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졌고 LG화학은 외환위기의 거센 폭풍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화학이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사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석유화학 제품은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없던 것 아닙니까.


화학의 마술 같은 매력에 끌려 지내다보니 벌써 40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성 회장은 "대과 없이 기업생활을 마무리하고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라며 "후배들이 축적된 기술과 인재 경영 노하우를 잘 활용하고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힘을 합쳐 가꿔온 화학기업이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성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 당분간 고문으로 LG화학 부문의 경영을 조언하게 된다.


고문에서도 물러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느냐고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앞으로도 화학만을 생각할 것 같습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