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면서 일부에서나마 소비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형 백화점들은 23일 끝난 올해 겨울 정기세일에서 매출이 지난해보다 6∼9% 늘어났다. 서울 강남과 여의도의 일부 고급 레스토랑은 손님들이 빈자리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한다. 지난해 4분기 신용카드 결제금액도 전년보다 10.6%나 증가,2002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년간 꽁꽁 얼어붙었던 소비심리가 이제 어떤 변화 상황을 맞고 있는 증거인 셈이다. 우리 경제는 사실 소비 이외 지표는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다. 무역수지만 하더라도 지난해 흑자규모가 2백94억달러나 됐다. 공장가동률도 과거 호황수준으로 평가되던 82%에 달한다. 물가도 안정된 편이고,성장률도 지난해 4.7%로 선방했다. 유독 소비(소매업생산지수)부문만 지난 2003년 2월 이후 무려 22개월째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회복은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다. 문제는 현재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소비회복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소비침체가 경기사이클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2000년 정부의 내수진작책에서 빚어진 '신용카드발(發) 과소비'와 '가계부채증가'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장롱이나 디지털TV를 앞당겨 장만한 사람들은 새로운 장롱이나 TV를 구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들은 대출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외식 횟수를 줄여야 한다. 거기에다 현정부 들어 도입된 접대비실명제와 부유세는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불충분한 소비수요는 시장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번 백화점 세일기간 중 매출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주로 의류 등 계절상품에 매기가 몰렸을 뿐 가구 TV 등 내구재는 매장이 여전히 냉랭했다. 부동산 시장도 일부 재건축 아파트가격은 오르지만 신규 분양 아파트 시장은 여전히 침체상태다. 물론 제품 구입을 연기하거나 자제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어느 시점에 가면 한꺼번에 분출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른바 펜트업 수요(Pent-up Demand·한꺼번에 분출될 억제된 수요)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장을 낙관하는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수요를 크게 기대한다. 하지만 고령사회 진입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보다 보험저축을 많이 하고 반부자정서가 만연한 사회분위기 등을 감안하면 펜트업 수요가 분출될 가능성은 낮다. 특히 반부자 정서는 소비여력이 있는 부자들로 하여금 지갑을 해외에서 열도록 하는 치명적 문제점이 있다. 모처럼 시작된 소비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돈을 가진 사람들이 국내에서 돈을 쓸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러려면 반부자 정서를 해소하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특히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어 올해는 돈쓰러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관광 시찰을 위해 해외로 빠져나간 사람이 전년보다 37% 증가한 4백67만여명에 달했다.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 상승은 국내 물가를 하락시켜 국내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부자들이 국내에서 지갑을 열어 펜트업 수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박주병 생활경제부장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