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벼랑에 섰다. 실리·온건 노선을 내걸고 지난해 2월 민주노총 수장을 맡은 이 위원장이 '정·재계와의 대화복원을 위한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주장했으나 지난 21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비토' 당했다. 이 위원장이 강경파에 밀려 조직장악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아차노조의 취업비리사건까지 터지면서 '민주적인 절차와 도덕성'을 내세워 온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는 사면초가 상황에 직면해 있다. 노·사·정 대화참여 불발 이후 민주노총은 다음달 정부 비정규직법안(적용업종 확대,처우개선)의 국회논의를 앞두고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강경파의 목소리가 득세하는 형국이다. 이 위원장이 이런 사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투쟁분위기에 휩쓸릴 경우 민주노총이 '증시에서 촉발된 모처럼의 경기회복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여론의 호된 질책을 면하기 힘들다고 노동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 위원장은 노·사·정 대화복원은 노동운동가로서 본인의 입지확보를 위해서도 민주노총 개혁과 조직장악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거리의 투사였던 단병호 전 위원장의 노선을 지지하는 강경파들의 입김이 워낙 거센데다 민노당과의 복잡미묘한 역학구도 등이 얽혀있어 이 위원장의 향후 행보에 정부와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재계는 민주노총과 대기업 노조들이 기아차 사태로 실추된 도덕성 회복을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사회공헌기금 조성 등을 내걸고 선명성 투쟁에 나설 경우 올해 기대됐던 노사 안정 기류는 물거품이 되고 '조기 춘투'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주노총은 핵심 전위세력인 기아차 노조의 채용비리로 도덕성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이는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이 위원장의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미 민주노총 홈페이지에는 기아자동차 사태와 관련,'결사투쟁만 읊조리며 회사에서는 경영자들 머리 위에 군림하고 취업시켜준다면서 상납 받는 노조…'(강남싸나이),'정말 노동자를 위한 단체일까…'(답답한시민),'취업 뿐 아니라 인사,승진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노개민추) 등 각종 비난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대기업노조나 민주노총 내 강경파가 자숙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기보다는 투쟁을 통한 국면돌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현대자동차 노조는 국민여론과 선명성 등을 감안해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으로 판정받은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화로 전환해줄 것을 회사 측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기아차 등도 노조 요구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 내 입지가 좁아진 이 위원장이 '정부의 비정규직법안에 제동을 걸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파의 유혹 내지는 압력을 뿌리치고 '대화와 타협'노선을 견지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비정규직 관련 정부안(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되,적용업종은 대폭 확대)의 국회논의를 앞두고 대대적인 반대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이 위원장이 지도력을 회복해 정부와 정면충돌을 피해나가지 못할 경우 "노조가 모처럼 회복기대감에 부푼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는 비판여론에 직면하는 사태를 자초할 수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