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 중앙대 교수ㆍ법학 > 올들어 드디어 증권집단소송 제도가 시행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정부 각 부처가 소비자 집단소송,식품보건 집단소송,환경 집단소송 등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집단소송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이런 소송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증권거래 규제,소비자 안전,식품위생 등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기관이 집단소송 도입에 앞장서는 것은 우습다. 그런가하면 시민단체에 관계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집단소송 못지않은 악법인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니 '판도라의 상자'가 활짝 열린 기분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이 효력을 발생함에 따라 대기업들은 우선 과거의 분식 문제를 두고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과거 분식을 집단소송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자 대통령이 이를 사면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으니 사정이 급하긴 급한 것 같다. 하지만 집단소송이 미칠 파장은 과거 분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험이 잘 보여 주듯 집단소송이란 '프랑켄슈타인' 같은 존재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 되고 만다. 더구나 대기업들은 과거 분식문제를 안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회계처리와 공시 등 모든 면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한 형편이다. 반면 증권집단소송법은 원고에 대해선 담보제공 의무를 제대로 부과하지 않으면서도 이사와 공인회계사에게는 무거운 연대책임을 지우고 있어 어느 면으론 미국보다 원고에 더 유리하게 돼있다. 그렇다면 우리 집단소송법은 '프랑켄슈타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터미네이터'인 셈이다. 오죽하면 우리가 증권집단소송을 도입했다는 소식에 미국의 기업인들이 한국이 큰 일을 저질렀다고 놀랐겠는가. 집단소송 오남용 억제를 위해 몇가지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하나 제도를 손질한다고 해서 집단소송의 본질적 문제가 해소되진 않는다. 국회에 의석변화가 오면 이를 폐지하는 것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기업인들은 비장한 각오로 집단소송과의 전쟁을 준비해야할 것이다. 기업이 회계원칙을 잘 지키고 정도경영을 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걸면 걸리는게 집단소송인지라 어느 기업이든 피고가 될 수 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가공할 위력을 갖고 있는 집단소송에선 변호사가 사실상 원고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느 변호사가 증권집단소송이 소액주주 보호제도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얘기다. 증권집단소송은 주주를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 주주를 위협하는 제도인 것은 미국의 경험으로 볼 때 분명하다. 단 한건의 집단소송이 기업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집단소송 문제에 보다 공격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우선 집단소송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에선 맨해튼연구소 등이 이런 기능을 하고 있다.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변호사들을 감시하고 그들을 정상적인 법무서비스 시장에서 격리시킬 필요도 있다. 이들이 특정 펀드와 은밀히 결탁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아닌지,변호사법과 변호사 윤리강령을 위반하지는 않는지 등도 면밀하게 감시해야 한다. 명목적인 원고와 변호사가 어떤 관계인지, 변호사가 소송비용을 어떻게 조달하고 그것을 어떻게 회복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감시의 눈길을 주어야 한다. 집단소송은 규모가 너무 커 '소송산업'이 돼버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이들과의 싸움은 기업의 사활을 건 '전쟁'인 것이다. 우리 경제계는 이제부터라도 집단소송이 갖고 있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점을 국민에게 홍보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선 월스트리트 저널과 포브스지(誌) 같은 언론매체가 집단소송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과 이를 제기하는 변호사들의 비리를 파헤치는 등 소송과의 전쟁에 앞장서고 있다. ABC방송은 집단소송 변호사들의 탐욕을 고발하는 특집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미국에선 이런 감시기능이 있어 소송 광풍을 그나마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